中韓古建築用語二——柱(기둥)
기둥은 지붕하중을 지면에 전달하는 수직 구조부재이다. 대들보(大梁)와 아울러 목조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부재이다. 원시움집에서는 보와 기둥의 기능이 아직 세분되지 못하고 사용되지 않은 예도 볼 수 있지만 점차 가구식구조(架構式構造)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기둥과 보가 나타나게 되었다. 같은 기능의 기둥이라도 시각적 안정감이나 장식성 등이 고려되면서 다양한 기둥이 나타나게 되었다. 기둥은 18세기에는 '지동'으로 불렸으며 이외에도 긷, 기디, 기둥 등으로 명칭이 다양하다. 기둥을 나타내는 한자로는 주(柱), 영(楹), (撑), 찰(擦) 등이 있다. 첫 기둥을 세울 때는 입주식(立柱式)을 거행한다. 현대건축에서는 가구식구조가 사라지면서 입주식이라는 개념은 없어지고 상량식(上樑儀式) 정도만 남았지만 가구식구조에서 기둥을 처음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량식과 같이 음식을 차려 놓고 입주식을 거행했다. 기둥을 세울 때는 원래 나무가 자라던 방향에 맞추어 세운다. 나이테가 남쪽은 넓고 북쪽은 조밀하기 때문에 방향을 구분할 수 있다. 원래 방향대로 세워야 비틀림이나 갈라짐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또한 기둥은 뒤집어 세우면 안 된다. 만약 기둥뿌리 쪽이 위로 가도록 세우면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계속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기둥을 거꾸로 세웠을 때는 솥뚜껑으로 나무를 두드리며 거꾸로 세워도 종다고 반복적으로 외쳐야 겨우 길함을 얻을 수 있고 사는 사람은 두고두고 온정을 베풀어야 길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가공된 나무의 위아래는 옹이와 표면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옹이는 위로 향하며 무늬는 산 모양으로 뾰족한 부분이 위쪽이다.
1. 기둥 세부명칭 2. 기둥의 종류 |나무기둥과 돌기둥| |원기둥과 각기둥| |흘림기둥| 도랑주| |고주, 평주, 귓기둥| |어미기둥| |심주와 사천주| |누상주와 누하주| |활주| |굴립주| |동자주| |동바리기둥| |다림보기와 그렝이| |귀솟음과 안쏠림|
1. 기둥 세부명칭




기둥은 상중하로 나눠 기둥머리, 기둥몸 또는 기둥허리, 기둥뿌리로 구분된다. 기둥머리에서는 도리방향으로 창방이 결구되어 기둥을 서로 연결시켜 주고 보방향으로는 익공과 헛첨차, 두공 등이 결구된다. 기둥뿌리는 초석에 접촉되는 부분으로 초석과는 그렝이 기법을 통해 밀착되며 기둥 아래에는 간수 등을 넣어 침입아나 부식을 방지하였다.
2. 기둥의 종류

|나무기둥과 돌기둥|

고구려 쌍영총에는 주실로 통하는 입구 양쪽에 팔각돌기둥이 사용되었으며 통일산라시대 석굴암은 본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 앙련과 복련장식이 있는 팔모돌기둥이 사용되었다. 이는 특수한 사례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경회루는 처음 지을 때 용조각이 있는 돌기둥이 사용되었다고 하나 조선 후기에 다시 지으면서 사다리꼴 형태의 팔모기둥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누각건물에는 하부기둥을 돌기둥으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시대적으로도 돌기둥의 사용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꾸준히 사용되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부분 목조건축이어서 돌기둥이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원기둥과 각기둥|


원기둥과 각기둥은 기둥의 단면형태에 따른 분류이다. 각기둥에는 사모기둥과 육모기둥, 팔모기둥이 있으나 원기둥과 함께 사모기둥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사모기둥보다는 원기둥이 격이 높다고 새각해서 주요 정전이나 큰 건물에는 원기둥이 사용되었고, 사모기둥은 부속채나 작은 건물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살림집에서 원기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한양에서 먼 지역의 귀족들이 원기둥을 쓰기 사작했고 조선 후기에는 상당수 살림집에서도 원기둥을 사용하게 되었다. 살림집에서 쓰인 원기둥은 주로 대청에서 벽 없이 노출된 기둥이 많다. 이외에 각기둥 중에서는 육모기둥과 팔모기둥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정자와 같이 비일상적인 건물에 사용되었다. 육모기둥은 조선시대 경복궁 향원전이나 창덕궁 사량정 등 육각정에서 볼 수 있다. 팔모기둥은 팔각정에 사용되었을 테지만 팔모기둥의 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고구려 쌍영총 주실 입구 양쪽에 세워진 흘림이 있는 팔모돌기둥과 통일신라시대 석굴암 주실 전면에서 볼 수 있다. 기원전 북부여 고주몽(高朱蒙) 설화에서는 칠모초석의 사용을 시사하고 있어서 다양한 각주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도 피안사 초석은 주좌의 모양이 타원형인데 기둥 모양이 주좌모양을 따랐다 면 매우 보기 어려운 단면형태의 기둥이었을 것이다.
|흘림기둥|

흘림기둥과 기둥 위아래의 지름을 달리하는 것을 말하며, 모양에 따라 다시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으로 나뉜다. 배흘림기둥은 기둥하부에서 1/3지점이 가장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곡선적인 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민흘림기둥은 기둥하부가 기둥상부보다 굵은 사선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대개 배흘림기둥은 원기둥이 많고 민흘림기둥은 사모기둥이 많다. 흘림기둥은 주로 큰 건물이나 정전건물에서 사용했는데 이유는 기둥이 안정되어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전건물에서도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를 엔타시스(Entasis)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배흘림기둥이 묘사되어 있음을 볼 때 열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 말까지 이어진다.


현존하는 건물 중에서 고려시대 봉전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과 조선시대 대부분의 정전건물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강릉 객사문이 배흘림 정도가 가장 강하다. 통일산라시대 목조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쌍봉사 철감선사부도(858)에서 강한 배흘림기둥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서 조선시대보다는 그 이전건축에서 흘림을 강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팔작지붕보다는 맞배지붕 집에서 흘림이 강하다.

민흘림기둥도 배흘림기둥과 같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고구려 쌍영총 전실의 팔각돌기둥과 통일신라시대 경북 의성 탑리 5층탑신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개암사 대웅전, 해인사 응진전, 화엄사 각황전, 서울 남대문 ,쌍봉사 대웅전, 수원 장안문, 율곡사 대웅전 등에서 수없이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모기둥이 원기둥보다 격이 낮아 작은 건물이나 부속채, 살림집에서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일로 그 이전에는 구분이 없었고 대부분 건물에서 두루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랑주|

원목을 껍질 정도만 벗겨 거의 가공 없이 자연목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만든 기둥을 말한다. 도랑주는 조선 후기 자연주의 사상에 힘입어 살림집과 사찰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엄사 구층암 퇴칸 기둥으로 모과나무의 기괴한 모양을 그대로 살려 보로 쓰기도 하고 뒤집어쓰기도 했다. 또 경기도 안성시 청룡사 대웅전도 전체 기둥을 도랑주로 해 자연미를 그대로 나타냈다. 서산의 개심사에서는 심검당 주방으로 들어가는 퇴칸 기둥을 도랑주로 해 투박한 아름다움을 맘껏 표현하고 있다.
|고주, 평주, 귓기둥|


우리나라의 건물은 겨울과 여름의 추위와 더위에 동시에 견뎌야 하고 평면의 기능과 구조적인 이유로 가운데 공간을 사방으로 퇴칸이 감싸고 있는 이중구조이다. 지붕은 또 경사가 있기 때문에 외부에 돌려지는 기둥보다 내부에 돌려지는 기둥 높이가 높다. 따라서 기둥 높이를 기준으로 외곽기둥을 평주(平柱)라고 내부의 기둥을 고주(高柱)라고 한다. 평주는 퇴칸에 서있는 기둥이기 때문에 툇기둥(退柱)이라고도 한다. 평주나 고주 중에서 모서리에 있는 기둥을 귓기둥(遇柱)이라고 하는데 한국건축은 귓기둥에 추녀 등이 걸리고 하중을 제일 많이 받기 때문에 평주보다는 굵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며 귀솟음에 의해 기둥 높이도 평주보다 높다.
|어미기둥|


어미기둥은 주로 측면 외벽에 생긴다.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 측벽 정중앙에 종도리까지 이르는 고주가 사용도었다. 정칸 고주라고 보기도 어렵고 탑 심주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미기둥이 이렇게 종도리까지 올라간 경우는 봉정사 극락전이 유일한 실례이며 수덕사 대웅전은 보 밑에서 끝났다. 봉정사 극락전과 같이 기둥을 도리 밑까지 올리는 경우는 중국의 천두식구조(穿斗式構造)에서 나타나며 일본에서는 나라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와 같은 다이부쯔요이(大佛樣)라는 건축양식에서 보인다. 천두식은 중국 남방지역에서 주로 사용된 고식가구법으로 한국에서도 고대건축에서는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하는 건물에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봉정사 극락전은 천두식구조는 아니지만 측벽 어미기둥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천두식구조(穿斗式構造): 穿斗式结构的主要特点是整体结构的高度完整性,沿房屋的进深方向按檩数立一排柱,每柱上架一檩,檩上布橼,屋面荷载直接由檩传至柱。每排柱子靠穿透柱身的穿枋横向贯穿起来,成一榀构架。每两榀架构之间使用斗枋和纤子连在一起,形成一间房间的空间构架。

*다이부쯔요이(大佛樣):镰仓时代,渡宋日僧重源从中国福建沿海一带传到日本的建筑技术与形式。这一样式当时用于东大寺大佛殿的再建,技法传承自以宋人陈和卿为代表的福建工匠。现存:兵库县净土寺净土堂( l194年)、奈良东大寺南大门( 1199年)和开山堂(125O年)。
|심주와 사천주|






법주사 팔상전과 같은 목탑은 대개 평면이 정방형이고 정중앙에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기둥을 세운다. 이를 심주(心柱)하고 한다. 심주는 최상층 지붕 밖으로 빠져 올라 와 상륜장식의 지주역할도 하는데 이를 찰주(擦柱)하고도 부른다. 심주는 목탑에서 구조의 중심을 이룬다. 한국 영향을 받은 일본 목탑도 대부분 심주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는 잉쉬앵 포궁스 석가탑은 심주가 없다. 대신 탑 구조가 기둥, 보식 구조와는 다른 적층구조로 되어 있다. 심주를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도 상층까지 이어지는 기둥을 세우는데 이를 사천주(四天柱)라고 한다. 사천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수미산 중턱 네방향에 잇는 사천왕상이 주재하는 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단히 불교적인 명칭이다. 일반건물이라면 고주에 해당한다.
|누상주와 누하주|


중층 누각식 건물에서는 누를 기준으로 상하기둥을 구분하여 부른다. 이때 누 밑에 있는 기둥을 누하주(樓下柱), 누 위에 있는 기둥을 누상주(樓上柱)라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와 봉정사 대웅전 앞의 만세루 등과 같이 선종사찰(禪宗寺院) 금당 앞에는 누를 두어 누하로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 누하주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근경이 되어 입체성을 강조한다. 또 동적 공간처리와 누하의 어두운 공간에서 금당 마당의 밝고 넓은 공간으로 이동할 때 느낄 수 있는 신비감과 희열을 주는 종교적인 역할도 한다.
|활주|


추녀 밑을 받친 보조기둥이다. 우리나라 건물은 처마가 깊기 때문에 처마 모서리에 걸리는 추녀도 기둥 밖으로 매우 많이 빠져나간 길이가 길 때가 있다. 이 경우 추녀가 처지기 때문에 추녀 안쪽 끝을 무거운 돌로 눌러주기도 하고 철띠로 고주에 잡아매기도 하며 강다리라고 하는 부재를 이용해 지중가구와 묶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부족하기 때문에 추녀 끝에서 보조기둥을 받쳐주는데 이를 활주(活柱)라고 한다. 활주는 대개 추녀 끝에서 기단 끝으로 연걸되기 때문에 경사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활주 밑에는 초석을 따로 받친다. 이를 활주초석이라고 한다. 추녀와 만나는 부분에도 기둥에 주두를 얹듯 연화형으로 장식하거나 십자형으로 조각재를 끼워 치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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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 赞了这篇日记 2019-08-17 14:3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