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电影论·05周·青春片·疯狂的果实
中平康『狂った果実』再考

はじめに
中平康(1926-1978)は,1950年代なかばに日活からデビューし,長編第1作1『狂った果実』(1956)の成功を皮切りにその後の日本映画界で異端の才能を発揮した映画監督である。前期作では主に軽妙洒脱なスピード感溢れる作品で手腕を発揮し,その後もサスペンスやミステリー,その他あらゆるジャンルでそのテクニックを披露した。しかし,深刻なテーマ性や社会性をもつ題材の映画化よりも洗練された軽い画面を好む中平の作風は,当時の日本映画界においては正確に理解されなかった。また,中平は映画評論やエッセイなども多く残し,そうしたシリアスで重苦しい作品ばかりが国内の映画雑誌のベストテンにあげられる状況を批判した。映画を内容よりも形式で,つまり脚本をどのように映像化したか,そこにみられる映画作家の工夫や葛藤をこそ評価すべきである,とことあるごとに主張した。そのため,多くの場合,映画評論家を敵に回してしまったことによってか,結果として,その映画人生においては賞レースにまるで縁がなかった。したがって,いまだに確固とした評価の定まっていない呪われた映画作家であるとも言える。
소개
나카히라 코(中平康, 1926-1978)는 1950년대 중반 닛카쿠에서 데뷔하여 장편 1편 『狂った果実』(1956)의 성공을 시작으로 이후 일본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한 영화감독이다. 전작에서는 주로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속도감 넘치는 작품으로 실력을 발휘했고, 이후에도 서스펜스(悬疑), 미스터리(神秘), 그 외 모든 장르에서 그 기법을 선보였다. 그러나 진지한 주제나 사회성을 띤 소재의 영화화보다 세련되고 가벼운 화면을 선호하는 나카히라의 스타일은 당시 일본 영화계에서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나카히라는 영화평론과 에세이 등을 많이 남겼는데, 그러한 진지하고 무거운 작품들만 국내 영화잡지 베스트텐에 오르는 상황을 비판했다. 영화를 내용보다 형식, 즉 각본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거기서 보이는 영화작가의 고심과 갈등을 평가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영화평론가들을 적으로 돌린 탓인지, 그 결과 그의 영화 인생에서 수상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따라서 아직도 확고한 평가가 정립되지 않은 저주받은 영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国内での再評価の動きは,1999年に「中平康レトロスペクティヴ」と題して8作品が全国上映されたことによってようやく始まる。また,2003年には,第16回東京国際映画祭協賛企画「映画をデザインした先駆的監督・中平康レトロスペクティヴ2」として『闇の中の魑魅魍魎』(1971)と『変奏曲』(1976)を除く国内の映画全作品に加えて,日本初公開となった『狂恋詩』(1968),『猟人』(1968)の2本の香港時代の作品を含めた大規模な回顧上映が開催されている。さらに,2009年には,東京・ラピュタ阿佐ヶ谷にて,「孤高のニッポン・モダニスト 映画監督・中平康」と題して日活時代の作品から34作品が上映された。これにより,ようやく中平映画を再評価する機運が高まりつつあるものの,やはりいまだその作家論や作品論の数は多くない。これまでの中平映画をめぐる言説には,概して素早いモンタージュや早撮りの手法,映画に見られるメタ構造などに関するものが多くみられる。あるいは,フランス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たち,とくに批評家時代のトリュフォーやゴダールが『狂った果実』を称賛した事実を引き合いに,ヌーヴェル・ヴァーグに影響を与えた日本の映画作家といった観点からしばしば論じられる。
국내에서의 재평가 움직임은 1999년 '나카히라 고 레트로스펙티브'라는 제목으로 작품이 전국적으로 상영되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또한 2003년에는 제16회 도쿄국제영화제 협찬 기획 '영화를 디자인한 선구적 감독 나카히라 코 레트로스펙티브 2'로 '어둠 속의 이매망량'(1971)과 '변주곡'(1976)을 제외한 국내 영화 전 작품에 더해 일본 최초 개봉작인 '광연시(狂恋詩)'(1968)와 '猟人'(사냥꾼, 1968)의 홍콩 시대 작품을 포함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고 있다. 또한 2009년에는 도쿄 라퓨타 아사가야에서 '고독한 일본 모더니스트 영화감독 나카히라 코'라는 제목으로 닛카츠 시절의 작품 34편이 상영되었다. 이를 통해 드디어 나카히라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작가론이나 작품론은 많지 않다. 지금까지 나카히라 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대체로 빠른 몽타주나 빠른 촬영 기법, 영화에 나타난 메타구조 등에 관한 것이 많다. 혹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작가들, 특히 비평가 시절의 트뤼포나 고다르가 『미친 과실』을 극찬한 사실을 인용하여 누벨바그에 영향을 끼친 일본 영화 작가라는 관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본고는 기존에 지적되어 온 나카히라 영화의 스피디한 연출에 대한 재고를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나카히라 영화의 동시대적 평가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영화계의 '스타일리스트'나 '모더니스트'라는 단어로 자주 언급되는 나카히라 야스오라는 인물을 부각시킨다. 다음으로 장편 데뷔작 <미친 과일>의 분석을 통해 나카히라의 스피디한 연출이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존의 상투적인 평가를 갱신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本稿は,従来,指摘されてきた中平映画のスピーディな演出についての再考を目的とする。具体的にはまず,中平映画の同時代的な評価を中心に整理し,映画界の「スタイリスト」や「モダニスト」といった言葉で語られることの多かった中平康という人物を浮き彫りにする。次に,長編デビュー作『狂った果実』の分析を通して,中平のスピーディな演出とはいかなるものかを具体的に示し,最後にそうした従来の決まりきった評価を更新するような新たな観点を提示する。
1.中平映画再考のために
1.나카히라 영화 재고를 위해
먼저 1950년대 일본 영화와 닛케이의 개황을 정리해 보자.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GHQ의 영화 검열이 폐지되면서 그동안 상영이 어려웠던 시대극이 부활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또한, 50년대는 무엇보다 국제영화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이기도 했다. 구로사와의 '라쇼몽'이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미조구치의 '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 '우게츠 이야기', '산쇼다유(山椒大夫 )'는 1952년부터 2년 연속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기누가사 테이노스케는 1954년 <지옥문>을 칸 영화제에 출품하여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또한 1947년 미국 상원에서 시작된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일본 영화계에서도 빨갱이 사냥이 실시되어 이마이 타다시, 가토 타이 등 대형 영화사 감독들이 추방되고, 그 결과 독립 영화인들이 난립하게 된다. 쇼치쿠에서는 키노시타 케이스케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로 대표되는 멜로드라마나 서민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오즈의 '도쿄 이야기'(1953)는 정면 컷백에 의한 깔끔한 화면과 극도로 절제된 대사, 다다미에 가까운 높이에 설치된 카메라의 특징적인 로우 앵글 시점 등으로 세계 영화사에도 그 이름을 남긴 걸작으로 남아있다.
まずは,1950年代の日本映画と日活の概況を整理しておこう。1951年に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が締結され,GHQ による映画検閲の廃止とともに,それまで上映が難しかった時代劇が復活し,大衆の人気を博した。さらに,50年代といえば,なにより国際映画祭での黒澤明や溝口健二の活躍が目覚ましい時期でもあった。黒沢の『羅生門』が1951年に(威尼斯)ヴェネツィア映画祭のグランプリ(大奖)を獲得し,溝口の『西鶴一代女』( Saikaku ichidai onna ),『雨月物語』,『山椒大夫』は1952年から3年連続で,同じくヴェネツィア映画祭で受賞している。衣笠貞之助は1954年に『地獄門』をカンヌ映画祭に出品し,グランプリを獲得する。また,1947年のアメリカ上院に始まるマッカーシズム(马克思主义)の影響で,日本映画界でも赤狩りが実施され,今井正や加藤泰などの大手映画会社の監督たちが追放され,その結果,独立プロが乱立した。松竹では木下恵介や小津安二郎の映画に代表されるメロドラマや庶民の生活を叙情的に描く作品が多くつくられた。なかでも,小津の『東京物語』(1953)は,正面の切り返しによる端正な画面や,極限まで切り詰められた台詞,畳に近い高さに据えられたカメラからの特徴的なローアングルの視点などによって,世界映画史においてもその名を残す傑作となっている。
한편,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지적했듯이 "50년대 영화계에서 가장 큰 사건은 1954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사인 닛카츠(日活)가 제작 재개를 선언했을 때 일어났다."3 1942년 전시체제 하의 기업 통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영화 제작에서 철수했던 닛카츠는 1954년 제작 재개 첫 작품으로 『쿠니사다 추지(国定忠治)』(타키자와 에이스케滝沢英輔감독)를 발표한다. 와타나베 다케노부에 따르면, 이 시기는 이른바 5사 협정으로 인해 닛카츠가 감독과 배우의 인재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인의 활약의 장을 확보하기 쉬웠고, 이후 닛카츠 출신 작가와 배우가 닛카츠 액션의 독자성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4. 그리고 1956년에는 5사 협정에서 닛카츠를 포함한 6사 협정으로 확대되어 닛카츠는 어떻게든 시장 진입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56년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프로듀서 미즈노에 타키코는 감독 나카히라 코, 주연 이시하라 신타로로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결국 이 작품은 감독 후루카와 타쿠미, 주연 나가토 히로유키로 제작되었다5. 이후 미즈노에는 다시 이시하라 신타로 원작 및 각본의 '미친 과실'을 나카히라 코에게 감독을 맡기고, 주연으로 이시하라 유지로를 발탁하는 데 성공한다.
一方,四方田犬彦が指摘するように,「五十年代の映画界においての最大の事件は,一九五四年に日活という,日本でもっとも古い映画会社が製作の再開を宣言したときに生じた」と言えよう3。1942年に戦時体制下の企業統合により,一時的に映画製作から撤退していた日活は,1954年に製作再開第一作として『国定忠治』(滝沢英輔監督)を発表する。渡辺武信によれば,この時期はいわゆる五社協定により,日活が監督や俳優の人材集めに困難を要した時期であったが,そのことがかえって新人の活躍の場を確保しやすく,後の日活育ちの作家・俳優による日活アクションの独自性を生み出す一因となったと肯定的に捉えられるものである4。そして,1956年には五社協定から日活を含めた六社協定に拡大され,日活はどうにか市場への割り込みに成功していくのである。
そんな中,1956年1月に石原慎太郎の『太陽の季節』が芥川賞を受賞し,プロデューサーの水の江滝子は監督・中平康,主演・石原慎太郎でその映画化を進めていたが,結局この作品は監督・古川拓巳,主演・長門裕之で製作された5。その後,水の江は同じく石原慎太郎原作・脚本の『狂った果実』を中平康に監督させ,主演に石原裕次郎を抜擢することに成功する。
1-1.これまでの中平評
1-1. 지금까지의 나카히라 평
나카히라의 딸이자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나카히라 마미에 따르면, "유지로가 지금까지의 일본영화의 니마이메(二枚目)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엎고, 아버지는 초현대적인 감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당시 나카히라의 선구성을 평가했다.6 『미친 과실』은 그해 대히트를 기록했고, 같은 해 나카히라는 『미친 과실』 이전에 촬영한 『노려진 남자』, 『여름의 폭풍』, 『우유가게 프랭키』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젊은 감독으로 떠올랐다. 당시 스틸을 담당했던 사이토 코이치(斎藤耕一)는 나카히라가 데뷔 당시부터 "이야기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영화 기법을 잘 알고, 템포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증언한다.7 또한 『미친 과실』에서 의상을 담당한 모리 히데에(森英恵)는 "시대를 앞서간 것 같은",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나카히라를 '가벼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8 또한 동업자인 신도 카네토(新藤兼人)는 나카히라의 1957년 작품 『죽인 건 누구냐』에 대해 "번뜩이는 재능이 곳곳에서 보였고, 무엇보다 높은 자부심이 엿보였다. 이 재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두려웠다"고 칭찬했다9 . 따라서 데뷔 당시부터 나카히라 감독은 영화계 내부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재기 넘치는 신인 감독으로 극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中平の娘で小説家・エッセイストの中平まみによれば,「裕次郎はいままでの日本映画の二枚目の概念を根本からくつがえし,父はその超モダンな感覚で全く新しい映画を作り上げた」と当時の中平の先鋭性を評している6。『狂った果実』はその年大ヒットとなり,同年中平は,『狂った果実』の前に撮った『狙われた男』,『夏の嵐』,『牛乳屋フランキー』と一挙に4本の作品を発表し,一躍,若手の注目株として台頭する。当時,スチール( スチール撮影 =剧照摄影)を担当した斎藤耕一は,中平はそのデビュー時から,「物語を徹底して客観的に見,映画テクニックを知っていて,テンポ(节奏)がいい」ことが映画界で評価されていたと証言している7。また,『狂った果実』で衣装を担当した森英恵は「時代を先取りしたような」,「洒落たファッショナブルな映画を作っているという自負があった」と言い,中平を「軽さ」が表現できる監督だったと述懐している8。あるいは同業の映画監督である新藤兼人は,中平の1957年の作品『殺したのは誰だ』について「才気が随所にひらめき,何よりも高いプライドがうかがえた。どこまでこの才能が伸びるのかとおそれた」と称賛している9。したがって,デビュー当時から中平はテンポの良い,時代を先取りした才気溢れる新人だと映画界内部では絶賛されていたことがわかる。
一方で,中平の助監督を務めていた西村昭五郎によれば,「注文がうるさく,いつもキャンキャン言ってるから助監督たちにきらわれて,助監督のなり手がいなかった」とも言われている10。監督としてやや扱いづらい面も備えていたようだが,ある意味では中平の映画製作への並々ならぬ妥協なき執念も見てとれる。俳優の演出面で言えば,例えば『狂った果実』で主役7の春次を演じた津川雅彦は,中平の演出スタイルについて「イントネーションも感情もなくなるように」,「とにかく台詞を早く言わされた」と回想している11。あるいは,吉永小百合は『あいつと私』(1961)での中平の演出について,「前に喋る俳優の台詞が終わるやいなや,喋りだすように要求された」と述べ,中平の台詞回しのスピーディさへのこだわりを証言している12。こうした中平の演出スタイルは,映画評論家のミルクマン斎藤によれば,『狂った果実』の「フォトジェニックな映像とスピーディな映像リズム(快速的影像节奏)は,確かにフランス・ヌーヴェル・ヴァーグとの近似性を誰にも感じさせるもの」であるとされる13。
フォトジェニック」は、英語で「photogenic」と書きます。 辞書によると「写真映えする」「写真写りがいい」という意味のようです。 海外では主に、人に向けて使われる言葉です。 「She is very photogenic.」のように使い、「彼女はとても写真うつりがいい」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
한 편, 나카히라의 조감독을 맡았던 니시무라 쇼고로(西村昭五郎)에 따르면, "주문이 까다롭고, 항상 깽깽거려서 조감독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조감독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10 감독으로서 다소 다루기 힘든 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나카히라의 영화 제작에 대한 남다른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타협하지 않는 집념도 엿볼 수 있다. 배우의 연출 면에서는, 예를 들어 '미친 과실'에서 주인공 슌지를 연기한 츠가와 마사히코는 나카히라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 '억양도 감정 표현도 없이', '어쨌든 대사를 빨리 말하게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11. 혹은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는 『그 녀석과 나』(1961)에서 나카히라의 연출에 대해 "앞에서 말하는 배우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대사를 시작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하며 나카히라의 스피디한 대사를 고집한 것을 증언하고 있다12. 영화평론가 밀크맨 사이토에 따르면, 이러한 나카히라의 연출 스타일은 '미친 과실'의 '포토제닉한 영상과 스피디한 영상 리듬은 확실히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와의 유사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13.
1-2. 누벨바그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1-2.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への影響
1-2. 누벨바그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1958년 파리에서 개봉한 <미친 과실>은 놀라게 하는 주제, 빠른 전개, 참신한 커팅 등으로 프랑소와 트뤼포(1932-1984), 장 뤽 고다르(1930-) 등 프랑스 누벨바그 작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 대해, 샷의 명백한 연결 실수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나오는 명료하고 참신한 연출 스타일을 분석하며 열광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모든 샷이 등가물이며, 어떤 샷도 다음 샷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샷들은 완전하고 풍부하다"는 트뤼포의 분석은 그 자체만으로는 다소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나카히라의 새로운 영화에 매료된 트뤼포의 흥분을 느낄 수 있다15. 그리고 기존의 프랑스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나카히라의 참신한 샷의 축적이 트뤼포와 고다르 등의 다가올 누벨바그 영화를 준비시켰음은 분명하다. 이어 트뤼포는 나카히라의 스피디한 연출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狂った果実』は1958年4月にパリで公開され,(轰动的)センセーショナルなテーマ,スピーディな展開,斬新なカッティングなどによって,フランソワ・トリュフォー(1932-1984)やジャン = リュック・ゴダール(1930-)ら,フランス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たちに絶賛された14。トリュフォーはこの映画に関して,ショットの明らかなつなぎまちがいにも関わらず,そこから生まれる明快で斬新な演出スタイルを分析し,熱狂的に賞賛している。「すべてのショットが等価値で,どのショットもその次にくるショットを導くためのものではないため,それらのショットは完全で豊かなものになっている」というトリュフォーの分析は,これだけではやや意味が不明瞭だが,中平の新しい映画に魅了されたトリュフォーの興奮は伝わってくる15。そして,従来のフランス映画には見られなかった,中平の斬新なショットの積み重ねが,トリュフォーやゴダールらの来るべき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映画を準備させたことは明らかである。続けてトリュフォーは,中平のスピーディな演出方法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述べる。
弗朗索瓦·特吕弗 (フランソワ・トリュフォー) 프랑수아 트뤼포
若いときは,急いでいて,待ちきれず,アイデアでいっぱいだ。若い映画作家は,そのため,狂ったように性急な映画を撮らなければならない。登場人物が急いでいて,それぞれのショットが他のショットよりも先に映画の終わりの fin の文字にたどりつこうとしてひしめき合う,そんな小さなアイデアでいっぱいの映画を16。
젊었을 때는 서두르고, 기다릴 수 없고,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영화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미친 듯이 급하게 영화를 찍어야 한다. 등장인물들이 서두르고, 각각의 샷이 다른 샷보다 먼저 영화 끝의 fin이라는 글자에 도달하기 위해 다투는, 그런 작은 아이디어로 가득 찬 영화를 16.
이러한 국내외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카히라 영화의 특성은 우선 그 연출 스타일에서 볼 수 있는 속도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카히라는 위에서 언급한 트뤼포 등 프랑스 누벨바그 작가들이 그 몇 년 후에 찍은 영화를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클로드 샤브롤(1930-2010)의 『두 개의 열쇠』(À double tour, 1959)에 대해서는 '어색한 느낌'과 '가끔씩 앞뒤가 맞지 않은 연결'이 보인다며 영화 문법의 무시를 비난하거나, 고다르의 『멋대로 해라』(1960)에 대해 '근래에 나온 영화 중 가장 나쁜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17. 누벨바그 자체의 풍조에 대해서는 '의의는 인정하고 또 부러움도 느낀다'면서도 '언제부턴가 자신과 마스무라 야스조까지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로 기대받기 시작한 것에 당황스러워', 그리고 '저런 풋풋하고 싸구려, 형편없는 엉터리 영화'와 자신의 영화를 동일시되는 것을 싫어하여 "누벨바그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소란을 피웠다"고 후일 회고하고 있다18.
こうした国内外からの評価からもわかる通り,中平映画の特性はまずもってその演出スタイルにみられるスピード感にあると言える。しかしながら中平は,上述のトリュフォーらフランス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たちがその数年後に撮った映画を快く思ってはいなかった。例えば,クロード・シャブロル(1930-2010)の『二重の鍵』(1959)については「ギクシャクした感じ」や「テニヲハをときどき抜かしたようなつなぎ」が見られ,映画文法の無視を糾弾し,あるいは,ゴダールの『勝手にしやがれ』(1960)を「近来最低のフィルム」だと言い放った17。ヌーヴェル・ヴァーグ自体の風潮には,「意義も認め,またうらやましくも感じている」としながらも「いつの間にか自分や増村保造までが日本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旗手として期待され始めたことに戸惑い」,そして「あんな青っぽい,安っぽい,下手くそな駄映画」と,自分たちの映画が同一視されるのを嫌い,「ヌーヴェル・ヴァーグは認めないと騒いでいた」ことを後に述懐している18。
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たちは旧世代のフランス映画,いわゆる古き良きパパ世代の映画を弾劾し,みずみずしく新しい映画作りを模索した。その範となった日本映画の一本を監督した中平が,いわば弟子たちの映画を批判する構図にはどこか悲哀があるが,中平にとって,それまでの日本映画にはみられなかったスピーディな演出という特徴的なスタイルは,何も奇をてらったものではなかったのだろう。スタイルを保持しつつも新しい表現を創出していくためには,その根底に従来の映画文法に則った適切な演出作法が必要だったのである。その点,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特にゴダールの映画の伝統を反故にするかのような振る舞いには我慢がならなかったのかもしれない。トリュフォーの『狂った果実』評が具体性を欠き,いわば映画作劇法の新しさへの言及だけに留まっている点は,中平の何よりも一貫したスタイルを重視する姿勢とは相容れないものがある。したがって,以下のような中平の発言もそういったアマチュアリズムへの嫌悪からくるものだと理解されうるだろう。
누벨바그의 작가들은 구세대의 프랑스 영화, 이른바 옛날의 좋은 아빠 세대의 영화를 탄핵하고 신선하고 새로운 영화 만들기를 모색했다. 그 모범이 된 일본 영화의 한 편을 감독한 나카히라가 이른바 제자들의 영화를 비판하는 구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느껴지지만, 나카히라에게 이전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스피디한 연출이라는 특징적인 스타일은 결코 기이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근저에 기존의 영화 문법에 따른 적절한 연출 작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벨바그, 특히 고다르의 영화 전통을 거스르는 듯한 행동은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트뤼포의 '미친 과실' 평이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말하자면 영화 연출법의 새로움에 대한 언급에 머물러 있는 점은 나카히라의 무엇보다 일관된 스타일을 중시하는 태도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나카히라의 발언도 그러한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구나, 그 점은 이미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과 같은 아마추어리즘을 찬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포즈에 불과한 사상, 그것에 현혹되는 주제주의도 문제지만, 혀를 내두르는 악담을 손짓으로 들어 올리는 어리석음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동인 작가가 중간 소설잡지 편집자에게 타협한 작품. 그런 인상밖에 나는 받지 못했다. 나는 누벨바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만은 예외로 19.”
監督は誰でも出来る。なるほどそのことはもうバレすぎてはいる。しかし,この作品のようなアマチュアリズムを称揚することは大へん危険だと私は思う。ポーズでしかない思想,それに惑わされるテーマ主義にも手を焼くが,舌たらずの悪文を手ばなしで持ちあげる愚劣さは,もういいかげんにしてもらいたいものだ。同人諸作家が,中間小説雑誌の編集者に妥協した作品。そういう印象しか私は受けなかった。私はヌーヴェル・ヴァーグを認めない。トリュフォーの『大人は判ってくれない』だけは例外として19。
文章の最後に突然,トリュフォーの処女作『大人は判ってくれない』(1959)を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中でも唯一の例外として理解を示した中平の真意を推しはかるならば,トリュフォーの処女作は確かにゴダールの『勝手にしやがれ』と比べてもその演出スタイルはやや古典的であると言わざるを得ず,そうした従来の映画文法を部分的とはいえ,正確に踏襲するトリュフォーの手腕を認めているということだろう。
글의 마지막에 갑자기 트뤼포의 처녀작 『400번의 구타』(1959)를 누벨바그 중에서도 유일한 예외로 이해한 나카히라의 진의를 짐작한다면, 트뤼포의 처녀작은 확실히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 비해서도 그 연출 스타일이 다소 고전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부분적이긴 하지만 정확하게 따르는 트뤼포의 솜씨를 인정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 나카히라 감독은 '미친 과실'의 제작에 대해 '실은 22, 23일 만에 찍은 작품'으로 '하야마 로케와 도쿄 세트를 왕복하는 힘든 촬영'이었기 때문에 '바빠지면 스태프에게 콘티를 설명할 여유가 없어' '자전거 짐칸에 올라타고 촬영소 편집실과 수영장을 몇 번이고 왕복하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혹독한 말을 했던 나카히라 역시 '미친 열매' 제작 당시에는 바로 그 누벨바그적인 촬영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20.
そんな中平は『狂った果実』の制作について「実数は二十二,三日で撮った作品」で「葉山ロケ( ロケーション(location) )と東京のセット( 演劇や映画・テレビ作品などに用いられる、部屋・家・街路などを模して作られた装置。=布景 )を往復して大変な撮影」だったため,「忙しくなるとスタッフにコンテ( 映画・テレビの撮影台本。カットごとに詳しく記したもの。また、ラジオ放送の台本。「絵―」=故事板)を説明しているヒマ」がなく,「自転車の荷台に乗っかっては,撮影所の編集室とプールを何度も往復したりする有り様」だったと述べている20。フランス・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アマチュアリズムに関して厳しい言葉をついでいた中平も『狂った果実』製作時にはまさにそ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的な撮影方法だったことがわかる。
1-3.『狂った果実』の同時代評
1-3. 『미친 과실』의 동시대 평론
그 외 『미친 과일』에 대한 동시대 평론은, 예를 들어 이자와 준은 "지금까지의 풍속영화와는 달리 나카히라 자신이 가진 영화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의 유연성이 작품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나카히라는 현대의 리듬을 팔려고 하고, 처리할 수 없는 현대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그 현대의 표면을 긁어모은 것"이라는 다소 신랄한 평을 남겼다.21 또는 시라이 요시오(白井佳夫)는 『狂った果実』의 등장으로 "일본영화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고, 당시 일본영화에 만연했던 "과도한 관념주의나 장중하고 진지한 리얼리즘"을 일소할 수 있는 "광적인 절규형도 아니고, 영화의 기교와 형식의 통일에만 몰두하는 감각지상주의자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영화 작가"22로 나카히라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その他『狂った果実』についての同時代評は,例えば井沢淳が「これまでの風俗映画」とは違い,中平自身がもつ映画のリズムに身をまかせてしまう彼の柔軟さが,作品として現れているものの,「中平は現代のリズムを売ろうとし,処理し切れない現代の問題から眼をそむけて,その現代の表面をすくいあげる」のだとやや辛辣な批評を残している21。あるいは,白井佳夫は『狂った果実』の登場によって「日本映画に新しい時代がやってきたことを実感し」,当時の日本映画にはびこっていた「過剰な観念主義や,荘重深刻型のリアリズム」を一掃してくれるような,「ファナティックな絶叫型でもなければ,映画の技巧や形式の統一ばかりに専念する感覚至上主義者でもない,新しいタイプの映画作家」として中平を好意的に評している22。
あるいは,公開日前後の新聞紙上の短評を拾ってみれば,「(北原三枝演じる)女主人公のどっちつかずの性質のために話そのものもどことなくハキハキしない」ため,「太陽族映画のいちばんのトリエ」である,「べとつかないで,さっさと物語られるテンポ」が「だいぶソンをしている」としながらも「モーターボートの弟がヨットの兄と女を舟ごとぶっつけて殺すラストには少し長いが映画的に締ったいい感覚がみられる」とまずまずの評価が下されている23。また別の寸評では,クライマックスの海上でのボートの同シーンについて,「スピードとテンポ (节奏) とダイナミックな迫力 (充满活力的魄力) を持つほかに,もう一つ皮肉にも太陽族のおろかしさをそのまま象徴するような画面になりそうにも思われた」とそのテンポの良さを評価している24。中平の演出については,「第二作とは思えぬ巧さで,画面のつなぎの歯切れよさ(画面斜街的清脆/流畅),俳優の個性をいかした演技指導など,すでに第一線クラスだが,ラブシーン(love scene)になると不思議とテンポの狂いが見えるのは残念」と評されている25。なお,本作を「徹底した女性侮べつ映画」で,「刺激的な扇情場面を見世物」としていて,「どんな角度からも若いものには見せられない狂った内容の作品」と酷評している紙面も見られる26。それに対して,「大衆娯楽としての映画の性質を一応はわきまえて」いて,「青少年にいいとまではいえぬが,大して害はない」としているものもある27。以上により,『狂った果実』の同時代評では,概して演出面におけるテンポの良さを評価する向きと,内容面ではセンセーショナルなテーマに関して議論が集中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
또는 개봉일 전후의 신문지상의 단평을 살펴보면, 「(기타하라 미에가 연기한) 여자 주인공의 어정쩡한 성격 때문에 이야기 자체도 어딘지 모르게 산뜻하지 않다」며, 「태양족 영화 최고의 트리오」인 「붙어있지 않고 빠르게 이야기되는 템포」가 「많이 싱겁다」고 평했다. "모터보트를 탄 동생이 요트에 있는 형과 여자를 배를 통째로 부딪혀 죽이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길지만 영화적으로 잘 짜여진 느낌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23 또 다른 평론에서는 클라이맥스의 해상 보트 장면에 대해 "속도와 템포, 역동적인 박력 외에도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족의 우스꽝스러움을 그대로 상징하는 듯한 화면이 될 것 같았다"고 평가하고 있다.24 나카히라의 연출에 대해서는 "두 번째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고, 화면의 연결이 매끄럽고, 배우의 개성을 살린 연기지도 등 이미 일류 수준이지만, 러브신에 이르러서는 이상하게도 템포가 엉망진창인 것이 아쉽다"고 평가하고 있다25. 또한 이 작품을 '철저한 여성비하 영화'로 '자극적인 선동 장면을 구경거리로 삼고 있으며,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젊은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미친 내용의 작품'이라고 혹평하는 신문도 볼 수 있다26. 이에 반해 "대중 오락으로서의 영화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청소년에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크게 해롭지는 않다"는 평도 있다.27 이상과 같이 『미친 과실』에 대한 동시대 평론에서는 대체로 연출적인 면에서 템포가 좋다는 평가와 내용적인 면에서 선정적인 주제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친 과일』을 다시 생각하다
2.『狂った果実』再考
では,ここからは実際に『狂った果実』から中平のスピーディな映像スタイルの例をいくつか見てみよう。まずは映画の冒頭,石原裕次郎演じる兄の夏久と津川雅彦演じる弟の春次が鎌倉駅から急いで汽車に乗り込むシーンである。映画において,映像のスピード感を増す方法はいくつか考えられるが,ここでは人物のアクションに注目してみよう。
이제부터는 실제로 '미친 열매'에서 나카히라의 스피디한 영상 스타일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먼저 영화 초반, 이시하라 유지로가 연기한 형 나츠히사와 츠카와 마사히코가 연기한 동생 하루지가 가마쿠라 역에서 서둘러 기차를 타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 영상의 속도감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인물의 액션에 주목해보자.
2-1. 스피디한 영상 표현
2-1.スピーディな映像表現
最初のショットで駅舎の上方からティルトダウンしてきたカメラは,左からインしてくるタクシーを捉える(3.4秒,以下,括弧内はショットの持続時間を記す)。急停車してショットが変わり,急いでタクシーから降りる二人の若者,切符はいらないと兄が言い,二人は急いで改札を通り抜け(8.2秒),ショット変わって階段を走って駆け上がる(4.4秒)。人混みをわけながら列車に飛び乗り(5.0秒),騒々しく荷物を網棚に乗せ,席に座る(5.6秒)。席に座ってからも汗をふいたり,サングラスを外したりする二人の動作は大げさで画面はなかなか落ち着かない(16.4秒)。このシーンでは,細かいカット割りによるスピード感に加えて,俳優の演技,つまり走って階段を駆け上がったり,列車に飛び乗ったり,荷物を放り投げたりするという人物のアクションの素早さによってスピーディな映像となっている。
첫 번째 샷에서 역 건물 위쪽에서 아래로 기울어진 카메라는 왼쪽에서 들어오는 택시를 포착한다(3.4초, 이하 괄호 안은 샷의 지속 시간을 나타낸다). 급정거하고 샷이 바뀌고 서둘러 택시에서 내리는 두 청년, 형이 표는 필요 없다고 말하자 두 사람은 서둘러 개찰구를 통과하고(8.2초), 샷이 바뀌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4.4초). 인파를 뚫고 기차에 올라타고(5.0초), 시끄럽게 짐을 선반에 올려놓고 좌석에 앉는다(5.6초). 자리에 앉은 후에도 땀을 닦거나 선글라스를 벗는 두 사람의 동작은 과장되어 화면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16.4초). 이 장면에서는 세밀한 컷 분할로 인한 속도감과 더불어 배우의 연기, 즉 뛰어서 계단을 뛰어오르고, 기차에 뛰어오르고, 짐을 던지는 인물의 빠른 액션으로 인해 스피디한 영상이 된다.
다음으로 속도감 있는 대사의 예시를 살펴보자. 영화 전반부, 친구 집에 놀러 온 형제는 나츠히사의 친구들과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카메라는 신구 세대의 갈등과 넘치는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할지 고민하며 우울한 감정을 주고받는 두 청년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업으로 포착된 배우들은 빠르게 대사를 내뱉고, 앞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숏이 바뀌고 다음 인물이 말을 시작한다.28 숏의 빠른 교체로 영상에 리듬이 생기는데, 이는 숏과 숏의 몽타주에 의한 외적 리듬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는 여기에 더해 배우가 대사를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것으로 화면 내부의, 말하자면 내적인 영상 리듬도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논쟁도 마지막 "배고프지 않아?"라는 대사로 마무리된다. 밥 먹자"라는 대사로 갑자기 중단된다. 인물을 클로즈업(close up)하여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이 더해지고, 빠른 대사와 맞물려 묘한 박력을 지닌 장면이지만, 마지막 허공을 찌르는 담담한 대사로 단숨에 전체가 수렴되어 다음 장면으로 바로 전환된다29.
次に,台詞回しの速さの例を見てみよう。映画の前半,友人宅にやってきた兄弟は夏久の友人たちと現代社会の問題点について議論を交わす。新旧世代の軋轢と,あり余るエネルギーをどこに注いでいいか戸惑いながら鬱屈とした感情をぶつけ合う5人の若者を,カメラは交互に映し出していく。アップで捉えられた俳優たちは早口で台詞をまくしたて,前の台詞が終わるやいなやショットが変わり,次の人物が喋り始める28。ショットの素早い交替によって映像にリズムが生まれているが,これはショットとショットのモンタージュによる外的なリズムの創出であると言える。このシーンではそれに加え,俳優が台詞を早口で読み上げることで,画面内部の,いわば内的な映像のリズムも上乗せされている。そして,延々と続けられるかに思われる議論も最後の「お腹空かない? メシにしよう」の台詞で唐突に中断させられる。人物をアップで捉えることで画面からにじむ圧迫感が増し,早口の台詞とも相まって異様な迫力を持ったシーンであるが,最後の虚を衝くあっけらかんとした台詞によって,一挙に全体が収束し,次のシーンへ即座に切り替えられる29。
あるいは,必ずしもショットの交替がなくても台詞回しの速さだけで,映画としてのスピード感が増す例を見てみよう。上述のシーンのすぐ後に,男たちがパーティを開いて女性をひっかけようと画策しているシーンである。俳優の台詞が先にしゃべった人物のすぐ後に,ほぼ前の台詞の語尾と重なるように演出されていることによって,トリュフォーの言う「若者の性急さ」がうまく表現されている。人物たちはそれぞれに食べ物をほおばりながら,気の向くままに,思いついたことをそのまますぐ口に出す。こうしたワンショット内での俳優の台詞の応酬は他の中平映画にもしばしば見られ,特にコメディ映画にその傾向が強いと言える。上述の津川や吉永の証言もこうした滝のような台詞の応酬に関するものであった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혹은 꼭 샷의 교체가 없어도 대사의 속도감만으로 영화로서의 속도감이 높아지는 예를 살펴보자. 위 장면의 바로 다음 장면은 남자들이 파티를 열어 여자를 꼬시려고 작전을 짜는 장면이다. 배우의 대사가 먼저 말한 인물의 바로 뒤, 거의 앞 대사의 말미와 겹치도록 연출됨으로써 트뤼포가 말하는 '젊은이의 성급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음식을 먹으며,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말을 내뱉는다. 이러한 원샷 속 배우들의 대사 주고받기는 다른 나카히라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특히 코미디 영화에서 그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츠가와 그리고 요시나가의 증언도 이러한 폭포수 같은 대사 주고받기에 관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카히라 영화의 스피디한 연출은 액션의 신속성, 샷의 빠른 전환, 원샷의 빠른 대사 전환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외에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영상의 속도감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카메라가 좌우로 빠르게 패닝하는 등 화면에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가미되면 고정된 화면보다 영상으로서의 속도감이 더 커진다. 그러나 <미친 과일>에서는 그런 수법은 신중하게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필요 이상의 카메라의 움직임은 나카히라에게 있어 기피해야 할 것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양면성은 스피디한 연출로 평가받아온 <미친 과일>에서 오히려 고전적 영화의 리듬을 따르는 듯한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以上見てきた3つの例によって,中平映画のスピーディな演出とは,アクションの素早さ,ショットの素早い交替,ワンショットにおける台詞回しの速さによって特徴づけられるだろう。ところで,これらの他にも,カメラの動きによって映像のスピード感を増す方法は考えられる。俳優の顔の(take a close-up)アップを撮る場合,例えば,カメラが左右に素早くパンするなどして少しでも画面に動きが加わることで,固定画面のそれよりは映像としてのスピード感は増す。しかし,『狂った果実』においては,そういった手法は周到に退けられ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必要以上のカメラの動きは,中平にとって忌避すべきものであったのだろう。したがって,こうしたアンビバレンツは,スピーディな演出と評価されてきた『狂った果実』において,むしろ古典的な映画のリズムに則ったようなシーンが多々あることにも当てはまる。
2-2.古典的映像演出
2-2. 고전적 영상 연출
그 예로서, 여기서는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슌지가 키타하라 미에가 연기한 에리와 수상스키를 즐긴 후, 바위틈에서 일광욕을 하는 장면이다(아래 그림 참조). (1) 바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의 다소 긴 샷(5.8초), (2) 살짝 닿은 두 사람의 양발을 포착한 업샷(7.7초), (3) 옆에 누워있는 에리를 신경 쓰며 침을 흘리는 하루지의 업(7.5초), (4) 다시 돌아서서 에리의 업(4.1초), (5) 수면 위를 흔드는 해초(5.7초) 해초(5.7초), (6)에리와 반대쪽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침을 삼키는 하루지(5.0초), (7)다시 수면의 해초(4.5초), (8)다소 긴장한 모습의 에리(5.3초), (9)강하게 움켜쥔 하루지의 왼손(4.3초), (10)손에서 모래를 쥔 에리(4.3초) 배의 왼손(3.5초), (11) 서로 옆을 신경 쓰는 두 사람의 모습(15.5초), (12) 뛰어올라 배를 고정시키는 하루키(5.0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에리의 바스트 샷(6.2초)으로 마무리되는 이 장면에는 대사가 하나도 없다. 한 마디도 없이 마치 무성영화처럼 신체의 부분적인 업을 많이 사용한 컷 분할로 두 사람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내 인물의 움직임이 적고, 분주한 샷의 교체도 없기 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나카히라의 스피디한 연출 스타일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즉, 뒤집어 보면 나카히라의 솜씨는 이러한 고전적 영화 언어를 구사한 숏의 조합을 통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その例として,ここで2つのシーンを取り上げてみよう。まずは,春次が北原三枝演じる恵梨と水上スキーを楽しんだ後,岩場で日光浴をするシーンである(以下,図版参照)。(1)岩場に並んで寝転ぶふたりのややロングのショット(5.8秒),(2)微かに触れ合う二人の両足を捉えたアップショット(7.7秒),(3)隣に寝転ぶ恵梨を気にして生唾をのむ春次のアップ(7.5秒),(4)切り返して恵梨のアップ(4.1秒),(5)水面に揺れる海藻(5.7秒),(6)恵梨と反対の方を向き,もう一度生唾をのみ込む春次のアップ(5.0秒),(7)再び水面の海藻(4.5秒),(8)やや緊張している様子の恵梨のアップ(5.3秒),(9)強く握りしめる春次の左手(4.3秒),(10)手持ち無沙汰に砂をつかむ恵梨の左手(3.5秒),(11)お互いに隣を気にする二人のショット(15.5秒),(12)飛び起きて船をつなぎ留めにいく春次(5.0秒),と続き,最後に春次の姿を微笑ましく見つめる恵梨のバストショット(半身镜头)(6.2秒)で終わるといった具合に,このシーンには台詞はひとこともなく,まるで無声映画のように身体の部分的なアップを多用したカット割りで二人の心情を表現している。画面内での人物の動きは少なく,せわしないショットの交替もないため,従来言われている中平のスピーディな演出スタイルには当てはまらないものである。つまり,裏を返せば,中平の巧みさとは,こうした古典的な映画言語を駆使したショットの組み合わせによっても正確に物語を紡いでいくことができる点にあるのだ。
続いて,古典的な映画のリズムの例として,十分に間をとった台詞の掛け合いのシーンを見てみよう。ナイトクラブで恵梨がアメリカ人の夫といるところに遭遇した夏久が恵梨に弟をたぶらかさないように諭すと同時に自分とも関係を持つように迫るシーンである。それまでの性急さからは一転して,会話の最中,二人の俳優の台詞は十分な間が取られている。台詞回しは,上でみたものよりもはっきりとスピードダウンしている。また,ショットの交替のタイミングは的確で,人物の動きに合わせてカメラがそれを追いかけるという,必要最低限の抑制された演出がなされている。注目すべきは,最初のショットであるナイトクラブの場面の終わりは黒みにフェードアウト( fade-out )し,続くショットは葉山の海岸を捉えたエンプティ・ショットと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 30 時間経過や大まかな場所を示すために挿入されるこうしたショットは,エスタブリッシング・ショット( Establishing Shot=定场镜头) とも呼ばれ,状況説明的な意味を持つショットである。トリュフォーが「すべてのショットは,次に続くショットを導くためのものではない」と分析した点は,この例によって誤りであると認めざるをえない。しかし,このエンプティ・ショットは決して無駄なショットではなく,性急さばかりが目立つと言われてきた中平の映画において,絶妙な映像のリズムを生み出すクッションとなっているのである。
이어 고전적 영화 리듬의 예로서 충분한 간격을 두고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이트클럽에서 미국인 남편과 함께 있는 에리를 마주친 나츠히사가 에리에게 동생을 속이지 말라고 충고하는 동시에 자신과도 관계를 맺으라고 압박하는 장면이다. 이전의 급박함과는 달리 대화 도중 두 배우의 대사는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있다. 대사 전달은 위에서 본 것보다 확연하게 속도가 느려졌다. 또한 숏의 교체 타이밍이 정확하고,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가 이를 따라가는 최소한의 절제된 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첫 번째 샷인 나이트클럽 장면의 끝부분은 검은색으로 페이드 아웃되고, 이어지는 샷은 하야마의 해안을 담은 빈 샷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다.30 시간 경과나 대략적인 장소를 보여주기 위해 삽입되는 이러한 샷은 설정 숏(Establishing Shot) 라고도 불리며, 상황 설명적인 의미를 가진 샷이다. 트뤼포가 "모든 샷은 다음 샷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한 점은 이 예시를 통해 오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빈 샷은 결코 쓸데없는 샷이 아니며, 성급함만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아온 나카히라의 영화에서 절묘한 영상 리듬을 만들어내는 쿠션이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카히라는 전통적 기법에 따른 고전적 영화의 리듬도 정확하게 필름에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전반부에 많이 보였던 인물들의 빠른 액션, 샷과 샷 사이의 빠른 몽타주, 빠른 대사의 주고받기 등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사라지고, 탄탄한 고전적 연출 스타일로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以上見てきた2つの例によって,中平は伝統的な作法に則った古典的な映画のリズムをも,正確にフィルムに焼き付けていることがわかる。映画の前半部に多く見られた人物のアクションの素早さ,ショット同士の素早いモンタージュ,早口での台詞の応酬などは物語の後半になるにつれ次第になりを潜め,堅実な古典的演出スタイルでもって人物や出来事は描写されているのである。
2-3.中平の特異なスタイル
2-3. 나카히라의 독특한 스타일
마지막으로, 빠른 몽타주로 연결되는 장면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찍은 샷의 연결이 공존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동시대 평론에서도 많이 언급된 이 영화의 유명한 클라이맥스, 항공촬영으로 촬영한 해상 장면이다. 참고로 이 장면은 마지막 장면까지 8분 40초 동안 이어진다. 밤새도록 나츠히사와 에리가 탄 요트를 찾아 헤매던 슌지는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멀리서 두 사람을 발견한다.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든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서서히 두 사람의 요트로 다가간다.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묘한 표정을 짓는 나츠히사와 에리. 슌지는 두 사람의 요트에 다가갔다가 멀어지고, 결코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항의를 표시한다. 몇 번의 접근과 이탈을 반복한 후, 슌지는 무심히 두 사람의 요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포위하기 시작한다. 부감된 이 장면은 46.5초 동안 지속되며, 카메라는 슌지의 보트가 만들어내는 파도의 궤적을 계속 포착한다. 에리의 얼굴 클로즈업(4.5초), 나츠히사의 얼굴 클로즈업(4.1초), 보트를 서서히 접근하는 하루키의 바스트 샷(3.9초), 갑자기 웃는 나츠히사의 클로즈업(3.6초), 하루키의 클로즈업(2.4초)과 짧은 샷이 이어지며 요트 위의 나츠히사와 에리의 투 샷으로 원을 그리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하루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을 수 없게 된 에리가 슌지의 보트에 접근하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들려는 장면(13.7초), 에리가 뛰어든 모습을 슌지의 보트 너머로 포착한 장면(5.5초), 바다 속 에리를 확인한 슌지가 길게 그려진 원호를 그리며 계속된 원호에서 이탈하여 두 사람의 요트에서 한 번 멀리 거리를 둔다(4.6초). 멀어져 가는 슌지를 바다 속에서 바라보는 에리(1.1초), 멀어져 가는 슌지의 뒷모습이 샷의 끝에서 방향을 바꾸고(10.5초), 다시 에리의 리액션 샷(1.3초), 방향을 바꾼 슌지의 보트가 이번에는 일직선으로 에리 쪽으로 다가온다(4.2초). 그 후, 에리의 리액션(1.0초), 다가오는 슌지의 보트(1.6초), 에리의 리액션(0.9초), 슌지의 보트(1.1초), 나츠히사의 리액션(0.5초)으로 조금씩 쇼트 전환을 더한 후, 여기서부터 영상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보트의 선미(0.5초), 비명을 지르는 에리(0.2초), 보트의 선미가 카메라를 가로지르는 장면(0.5초), 에리(0.2초), 검은색 보트의 뒷바닥(0.5초), 에리(0.5초), 에리를 치고 지나가는 슌지의 보트(1.0초)로 샷이 연속해서 바뀐다. 여기서는 2.7초 동안 6 개의 샷이 몽타주되어 있다. 그 후, 슌지는 마찬가지로 요트에 남아있던 나츠히사에게 보트를 통째로 들이받아 형에게 복수를 한 후, 기절초풍한 채 그 자리를 떠난다. 보트가 나츠히사와 충돌하는 장면은 6.8초 동안 13개의 샷이 쌓여 최소한의 지각 가능한 몽타주로 특히 스피디한 영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후 보트를 타고 떠나는 슌지의 샷(13.4초), 나츠히사와 에리가 타고 있던 보트의 잔해 삽입(9.2초), 허탈한 하루지의 바스트 샷(19.6초)이 이어지고, 그 후 카메라는 39.6초에 걸쳐 수평선으로 사라져가는 하루지의 보트를 계속 응시한다.
最後に,素早いモンタージュによるつなぎと,じっくりと間をとったショットのつなぎが共存しているシーンを見てみよう。上述の同時代評でも多く言及されていた,この映画の名高いクライマックス,空撮による海上のシーンである。ちなみにこのシーンは,ラストショットまで8分40秒続く。一晩中,夏久と恵梨が乗ったヨットを探し回っていた春次は,翌朝ようやく遠くにふたりを見つける。怒りの感情をなんとか顔に出さないようにしながら,徐々にふたりのヨットに近づく春次。弟の姿をみとめ,神妙な面持ちになる夏久と恵梨。春次はふたりのヨットに近づいては遠ざかり,けっして会話をしようとしないことで無言の抗議を示している。何度目かの接近と離脱ののち,春次はおもむろにふたりのヨットの周りをぐるぐると包囲し始める。俯瞰でおさめられたこのショットは,46.5秒続き,カメラは春次のボートが立てる波の軌跡を捉え続ける。恵梨の顔のクロースアップ(4.5秒),夏久の顔のクロースアップ(4.1秒),ボートを徐々に近づける春次のバストショット(3.9秒),突然笑い出す夏久のクロースアップ(3.6秒),春次のアップ(2.4秒)と短いショットが続き,ヨット上の夏久と恵梨のツーショットで円を描きながら徐々に近づく春次の姿を見つめながら,居ても立ってもいられなくなった恵梨が春次のボートに近づくべく海中に飛び込もうとするショット(13.7秒),恵梨が飛び込んだ姿を春次のボート越しに捉えたショット(5.5秒),海中の恵梨を確認した春次が,長らく描き続けた円弧から離脱し,一度ふたりのヨットから遠くに距離をとる(4.6秒)。離れていく春次を海中から見つめる恵梨(1.1秒),遠ざかる春次の後ろ姿がショットの終わりで向きを変え(10.5秒),再び恵梨のリアクションショット(1.3秒),向きを変えた春次のボートが今度は一直線に恵梨の方へ向かってくる(4.2秒)。続いて,恵梨のリアクション(1.0秒),近づく春次のボート(1.6秒),恵梨のリアクション(0.9秒),春次のボート(1.1秒),夏久のリアクション(0.5秒),と小刻みにショット転換を加えたのち,ここからさらに映像のスピードが増す。ボートの舳先のアップ(0.5秒),悲鳴をあげる恵梨(0.2秒),ボートの舳先がカメラをまたぎ(0.5秒),恵梨のアップ(0.2秒),黒っぽいボートの裏底(0.5秒),恵梨を轢いて通り過ぎる春次のボート(1.0秒),と立て続けにショットがかわる。ここでは,2.7秒間に6つものショットがモンタージュされている。その後,春次は同様に,ヨットに残っていた夏久にボートごとぶつかり,兄への復讐を果たしたのち,呆然としてその場から去る。ボートが夏久にぶつかる場面では,6.8秒間に13個のショットが積み重ねられ,最低限,知覚可能なモンタージュによる特にスピーディな映像となっている。そしてその後,ボートで立ち去る春次のショット(13.4秒),夏久と恵梨の乗っていたボートの残骸のインサート(9.2秒),悄然とした春次のバストショット(19.6秒)が続き,そのあとカメラは39.6秒かけて水平線に消えていく春次のボートを見つめ続けるのである。
以上,確認してきたように,このラストシーンに見られる,ボートの衝突時の素早いモンタージュと春次の無言の表情を見つめ続けるロングテイク(long take)のショットの組み合わせこそが,中平の『狂った果実』における演出スタイルの真骨頂だと言えるのである。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보트 충돌 장면의 빠른 몽타주와 슌지의 무표정한 표정을 계속 응시하는 롱테이크의 조합이야말로 나카히라의 '미친 열매'에서의 연출 스타일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
おわりに
本稿では,まず,中平康という人物に対する同時代的な評価の変遷をたどってきた。そこに見られたのは,スタイリストやモダニストといった言葉で表される,中平の時代を先取る先鋭性や革新性に言及したものであった。しかし,そういった従来の評価よりも注目すべきことは,中平の処女作『狂った果実』においては,フランスの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作家たちに与えた影響という観点よりも,作品内で映像リズムやテンポ(音乐节奏的快慢)を自在に変化させ,新しい表現方法を模索し続けていた中平自身の作家性がたしかに認められることである。リズムやテンポの早さばかりが評価されてきた中平の演出スタイルであったが,むしろじっくりと間をとり,台詞に頼らない無声映画的な,いわば古典的な物語叙述も得意としてい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본고에서는 먼저 중평 강이라는 인물에 대한 동시대적 평가의 변천을 추적해 보았다. 거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스타일리스트, 모더니스트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나카히라의 시대를 앞서가는 예리함과 혁신성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평가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나카히라의 처녀작 '미친 열매'에서 프랑스 누벨바그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이라는 관점보다 작품 내에서 영상 리듬과 템포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새로운 표현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했던 나카히라 자신의 작가성이 확실히 인정되는 것이다. 리듬과 템포의 빠르기로만 평가받아온 나카히라의 연출 스타일이었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간격을 두고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무성영화적인, 말하자면 고전적 이야기 서술도 능숙하게 해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나카히라는 '미친 열매' 발표 1년 후 '일본영화의 템포와 리듬, 그 전통적, 고정관념의 타파에 대하여'라는 소론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ところで中平は,『狂った果実』発表の3年後,「日本映画のテンポとリズム,その伝統的・固定観念の打破について」という小論の中で,自身の作品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述べている。
私の作品はテンポが早いということが定説になっている。むしろ早すぎ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ようだ。ある人は,それを私が無理に作り上げたスタイルだと見,また他の人は私が批評家諸氏から“快適なテンポ”というたぐいの讃め言葉をいただきたいために背のびしているポーズだと思っているらしい。(中略)私の作品が,もし異常に早いテンポとリズムで物語られているとしても,それは全く私自身の生理的,感覚的な話術のテンポとリズムから規定されたものである31。
내 작품은 템포가 빠르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오히려 너무 빠르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스타일이라고 보고,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비평가들로부터 '편안한 템포'라는 찬사를 받기 위해 취한 포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략) 내 작품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템포와 리듬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자신의 생리적, 감각적 화술의 템포와 리듬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31.
자신의 스피디한 연출 스타일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타고난 생리적 템포와 리듬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템포의 빠름에 대해서도 계속 주석을 달아 "현실의, 우리 주변의 생활 감정은 이미 기존의 일본영화의 템포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며, "도시나 지방에서도 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느린 템포가 기존의 일본 영화의 고착화된 문법과 상식"이라는 것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32 이어서 "일본 영화 연출에는 이상한 전승이 있어 불필요한 '사이'를 넣지 않으면 연기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고, "심리적인 필연성이 조금도 없는 순간에 천천히 "좋은 얼굴"을 하는 악습"이 있다고 한다33.
自身のスピーディな演出スタイルは批評家受けを狙って無理やり創出したものではなく,生来の生理的なテンポとリズムからくるものだと明言している。しかし,そのテンポの早さについても続けて注釈を施し,「現実の,われわれの囲りの生活感情は,すでに従来の日本映画のテンポをはるかに追い越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言い,「都会や地方でも見る見るスピードアップされている」のにも関わらず,「そのスロー・テンポが従来の日本映画の定着された文法や常識」であることに苦言を呈している32。続けて,「日本の映画演出には不思議な伝承があって,不必要な“間”をやたらと入れないと演技ではないような錯覚がはびこっている」と指摘し,「心理的な必然性が毫もないような瞬間に,ゆっくりと“良い顔”をする悪癖」があるとする33。
また「不必要な,不的確な,思い入れ芝居をはずしただけで,大抵の日本映画は少なくとも現在の五分の一は,短くなり」,「テンポも早くなるだろう」と述べる34。そして,ことさら重要なのは,自身の映画の早いテンポについて「すでに現代の生活感覚から取残されかけている従来の日本映画のリズムを打ちこわさなければ新しい説話形式は生まれて来ないと考える」ためのスタイルであると述べていることである35。
또한 "불필요하고, 부정확하고, 억지스러운 연기를 제거한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일본 영화는 적어도 현재의 5분의 1은 짧아지고", "템포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34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의 빠른 템포에 대해 "이미 현대의 생활감각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전통적인 일본영화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으면 새로운 설화 형식은 탄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35.
이를 통해 나카히라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영화 표현을 끊임없이 모색했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화에는 빠른 템포를 만들어내는 스피디한 연출뿐만 아니라 인물의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말하자면 고전적 영화작법을 따르는 탄탄한 연출 스타일도 구사한다. 따라서 성급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연출을 겸비한 점이 중헤이의 영화 작가로서의 강점이며, 이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영화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야말로 중헤이 영화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거기에서 오늘날 재평가되어야 할 액추얼리티를 가진 나카히라 야스나리라는 감독의 작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このことから,中平は何よりも新しい映画表現を模索し続けていた作家だと言えるだろう。しかし,その映画には早いテンポを生むスピーディな演出だけではなく,人物の心境の変化を見せる場面ではじっくりと時間をかけ,いわば古典的な映画作法を踏襲した堅実な演出スタイルをも駆使するのである。したがって,性急さだけを推すのではなく,伝統的な演出をもあわせ持つ点が中平の映画作家としての強みであり,その両者を自在に映画の中に取り入れる手法こそが中平映画の特異なスタイルなのである。そこには,今日的に再評価されるべきアクチュアリティをもった中平康という監督の作家性をも見出せるだろう。
本稿では言及できなかった『狂った果実』と中平の他作品との関係や,同時代の他の作家,たとえば増村保造作品と中平作品の比較分析は今後の課題としたい。
본고에서는 언급하지 못한 『미친 열매』와 나카히라의 다른 작품과의 관계나 동시대 다른 작가, 예를 들어 마스무라 야스조 작품과 나카히라 작품의 비교 분석은 향후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註1 前年の1955年に助監督籍のまま演出した『狙われた男』という実質的な処女作があるが,公開は『狂った果実』の方が先である。『狂った果実』は,1956年7月12日,『狙われた男』は1956年9月11日に公開されている。2 このレトロスペクティヴのテーマに「デザイン」という言葉が盛り込まれているのは,中平の映画製作における実験的なスタイルが念頭に置かれ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原作なり脚本なりのさまざまなジャンルの素材を実際に映像化する上で,多種多様なアイデアを自身の作家性として画面内に定着させていった中平のスタイルを「映画をデザインした」と表現しているのだろう。3 四方田犬彦『日本映画史110年』集英社新書,2014年,160頁。4 渡辺武信『日活アクションの華麗な世界』未来社,2004年,28頁。5 中平まみ『ブラックシープ 映画監督「中平康」伝』ワイズ出版,1999年,56頁。6 同上。7 同上,70頁。8 同上,71頁。9 同上,50頁。10 同上,40頁。11 同上,68頁。12 『中平康レトロスペクティヴ』ミルクマン斎藤監修,プチグラパブリッシング,2003年,6頁。13 『至極のモダニスト ― 中平康』ミルクマン斎藤監修,プチグラパブリッシング,1999年,44頁。14 フランス大使館付参事官として三年間勤務した寺中作雄は,当時のパリ市内の映画館の日本映画の活況を以下のように報告している。「劇映画では日活作品『狂った果実』が『若者の感激』と改題されてすごい人気。このほか太陽族ものが大もてというわけだが,一流の批評家たちも筆をそろえ西欧風な演出とストーリーに賛辞をおくっている。フランスの青年たちは日本でこれだけのものが出来るとは,とうらやましがっている」(読売新聞,昭和33年6月4日)。15 François Truffaut, “Si jeunes et des japonais (Passion juvénile)”, in Cahiers du cinéma, no. 83, mai1958, pp. 54-55.16 Ibid, p. 56.17 『キネマ旬報』1960年4月下旬号。18 『映画芸術』1960年4月号。19 同上。20 『キネマ旬報』1962年春の特大号。21 井沢淳「中平康論 ― 若きアルティザンの登場」『キネマ旬報』1962年春の特大号。22 白井佳夫「中平康論小伝」『キネマ旬報』1962年春の特大号。23 『毎日新聞』,1956年7月19日。24 『読売新聞』夕刊,1956年7月4日。25 『読売新聞』夕刊,1956年7月13日。26 『日本経済新聞』夕刊,1956年7月16日。27 『朝日新聞』夕刊,1956年7月11日。28 このシーンは,15個のショットで構成されており,それぞれ7.7秒,6.7秒,11.8秒,3.0秒,6.0秒,3.7秒,3.7秒,2.0秒,11.4秒,1.4秒,1.8秒,3.8秒,2.4秒,5.8秒,4.0秒と,合計75.2秒続く。29 こうした台詞回しの速さからくるリズムは例えば,中平の同世代の増村保造の映画にも見られるが,従来通り,間をある程度取りながら台詞を継いでいく映画がまだまだ主流であったこの時代には,中平や増村の映画は相当早く感じられたはずである。30 直前の43.8秒続くシーンは,わずか4ショットで構成され,続いて5.8秒のエンプティ・ショットへとつながる。31 中平康「日本映画のテンポとリズム,その伝統的・固定観念の打破について」『キネマ旬報』1959年3月上旬号。32 同上。33 同上。34 同上。35 同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