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电影·14周·资料Archetypes in Japanese Film The Sociopolitical and Religious Significance of the Principa
Archetypes in Japanese Film
The Sociopolitical and Religious Significance of the Principal Heroes and Heroines
Gregory B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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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참는 여성과 약한 수동적 남성
도입
2장에서 언급했듯이, 순결한 무사는 전투에서 강해지기 위해 그녀를 거부해야 하고 고통받는 군주는 남성 중심 장르에서 최고의 고통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대 영화에서 불쌍한 미녀는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현대 영화에서는 특히 비극적인 어머니와 연인을 다룬 이른바 '여성 영화'(女性映画)에서 고통받는 여성으로 주목받으며,1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대개 나약하고 그녀의 고통에 맞설 수 없는 존재이다.
나약한 남성 연인은 유독 일본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1368년부터 1644년까지 명나라 시대의 중국 대중 문학에서 낭만적 사랑은 종종 남성을 특히 괴롭히고 약하고 한심하게 만드는 병으로 취급된다.2 이러한 견해는 의심할 여지없이 낭만적 사랑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유교적 우선순위를 반영한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유교적 전통을 공유하지만, 홍콩 영화에서처럼 50년대 일본 영화 속 남성 연인은 중국인보다 훨씬 약해 보였다. 이는 중국 문화에 순결한 무사의 원형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12세기 중국에서는 유교 학자가 무사를 남성의 이상으로 대체했다.3 무사 영웅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무사시처럼 순결해지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선과 중국식 무사도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소룡과 같은 현대의 쿵푸 영웅은 러브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반면 일본 문화에서 무사는 여전히 대중적인 남성의 이상으로 남아 있었고, 순결한 무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애인 소년은 여성이 실제로 약화되었다는 주장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약한 연인은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유교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 없다. 스티븐 닐은 할리우드 멜로 드라마와 뮤지컬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남성의 여성화를 관찰하고, 남성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여성화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여성화된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했다. 또한 닐은 고통과 기다림의 고통은 주로 여성들이 경험하지만 배타적이지는 않다고 말하며, <위대한 집념>의 록 허드슨을 남성의 고뇌의 예로 들었다.4
기다림은 수동성의 표현이지만, 서양 남성 연인은 비록 약하지만 결코 일본 연인만큼 수동적이지 않다. 오바 히데오의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1953-54)과 머빈 르로이 감독의 <워털루 다리>(1940)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일본 영화의 모델이 되었으며,5 두 영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중 우연히 만난 젊은 연인이 비극적인 상황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다 케이지가 연기한 일본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무력한 인물이다. 다이제스트 버전의 3시간 분량의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은 세 번뿐이며, 그 중 두 번은 자살 시도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일본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인 다리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그의 수동성을 증명한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로버트 테일러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자살 장면이자 첫 만남의 장소인 워털루 다리에서 단 한 번만 홀로 등장하며, 그 이후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함께한 삶을 회상한다. 전형적인 책임감 있는 미국 영웅인 테일러는 연인을 쫓아다녔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찾아 헤맸고, 두 사람의 이별은 남성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환경의 결과였다.
순결한 무사와 나약하고 수동적인 남성을 배우자로 삼은 일본 여주인공이 서양 여주인공보다 특히 더 많은 고통을 겪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비안 리가 연기한 <워털루 다리>의 여주인공은 물론 고난을 겪었지만 때때로 발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키시 케이코가 연기한 <너의 이름은>의 여주인공은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 단 한 번만 웃었고 그 이후에는 항상 같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이 영화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여성'이라는 일본의 원형을 대표한다.
비비안 리만큼이나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키시 케이코의 나무 같은 연기는 연기력 부족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바 히데오의 멜로드라마 스타일이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를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감독의 처리도 분명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장르가 처리를 결정했다.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은 종종 러브 스토리, 멜로드라마(영어 단어를 차용하여 메로도라마라고 발음)7를 마치 내용만 가지고 멜로드라마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처리 자체가 "사치스러운 연극성"이라는 영어 의미에서 멜로 드라마가 된다.8 젊은 연인을 다룬 가장 유명한 일본 영화는 <너의 이름은>과 같은 "러브 멜로 드라마"였다. 현대 영화의 또 다른 주요 장르인 가족 드라마만큼 많지도 않았고, 오즈, 나루세 미키오 등의 가족 드라마 걸작의 예술적 수준에 도달하거나 근접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가장 큰 흥행 히트를 기록했다.9
문화가 장르를 결정했다. 일본인들은 무사도와 유교의 영향으로 낭만적인 사랑을 멜로드라마로 간주했는데, 이는 일상 생활에서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높은 가치관의 이면에는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 현실적인 가족 드라마와 환상적인 사랑 멜로 드라마가 공존했다. 후자의 원형은 고통과 수동성을 모티브로 순종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졌다. 고통이 미덕으로 여겨질 때 사람들은 사회 질서를 자의적인 현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동성이 올바른 행동 방식일 때 사람들은 상사에게 복종하고 국가에 복종한다. 하지만 비극적인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사랑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항의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수하는 여성과 나약한 수동적인 남성의 원형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원형은 초월적일 뿐만 아니라 이 평범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미묘한 순수성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를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에 반대적일 수 있다. 서양에서도 진정한 사랑은 사실상 달성할 수 없다. 인류 역사상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진정한 연인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가족에 의해 헤어졌다는 잉마르 베리만의 <여름밤의 미소> 속 인물을 떠올려 보라. 비극적인 연인은 보편적이지만, 일본의 '고통받는 여성과 수동적인 남성'의 원형은 서양과 동양의 원형과는 그 발달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일본의 러브 스토리에 대한 다음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태
일본 최초의 사랑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 문화적으로 동등한 <고사기>의 창조 신화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을 오가는 데 사용되는 천공의 다리에서 이자나기 신과 이자나미 여신이 보석으로 장식된 창을 혼돈 속으로 떨어뜨린다. 섬이 만들어지고 그들은 내려와 그곳에 기둥을 세운다. 둘은 그 주변을 거닐며 성교를 하고 결국 더 많은 섬과 신을 낳는데, 그 중 하나인 불의 신이 이자나미를 죽게 한다.10 5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자나기는 죽은 자의 땅에서 그녀를 찾아갔지만 쫓겨나다.
기둥뿐만 아니라 보석으로 장식된 창도 남근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최초의 사랑 이야기는 솔직히 성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선과 악에 대한 지식과 관련된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이자나기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비극으로 인해 아내와 헤어지게 되고, 낙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이를 슬퍼한다. <만요슈>에 등장하는 초기 사랑 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기쁨을 축하하거나 이별의 슬픔을 애도하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 시들에서 남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여동생(いも)이라고 부르는 관습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남매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출산하다 죽는 이자나미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통받는 모든 여성들의 원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자나기는 수동적이지는 않지만 죽음과 오염 앞에서는 분명 나약하다. 부끄럽고 분노한 이자나미는 죽은 자들의 땅의 무사들이 자신을 쫓아오자 칼을 휘두르며 도망친다.11 나중에 그는 일본에서 여성 생식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복숭아에 의해 구해지며, 그 중 하나에서 민속 영웅인 모모 타로가 태어난다. 죽은 채 오염된 이자나미는 여성 복수귀의 원형이기 때문에 생식기-복숭아는 여성 영혼의 자비로운 면모를 상징할 수 있다. 페르세우스와 다른 서양 영웅들이 여성 악마를 죽이는 것과 달리 이자나기는 여성 악마와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으며, 우게츠의 도공처럼 여성 정령에 의해 위협을 받기도 하고 구원을 받기도 한다.
<고사기>와 <만요슈>가 완성된 이후 시대인 헤이안 시대(794~1185년)에는 교토 황실의 시녀였던 귀족 여성들이 최고의 산문과 운문을 썼으며, 작품의 주제는 주로 사랑이었다. 무라사키 부인이 11세기 초에 쓴 <겐지 이야기>는 세계 최초의 소설로 간주되며 히카루 겐지 왕자의 수많은 연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라사키 부인은 궁중의 여자 방과 산중 절에서 은밀하게 만나고 다음 날 시를 주고받는 우아한 자유 섹스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궁중 귀족의 난잡함이 항상 좋은 취향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기쁨은 만물의 무상함이라는 불교적 개념이 일본 문화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우울한 인식에 의해 대체됐다. <고사기>의 하늘에 떠 있는 다리는 꿈의 다리(겐지 이야기 마지막 장의 제목)가 되어 인생의 실체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은유가 된다.
헤이안 시대에는 고통이 고귀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가능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사키 부인과 같은 작가들과 그들의 여주인공들은 삶의 소멸(모노노아와레)뿐만 아니라 남성의 애정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슬퍼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겐지 왕자와 같은 연인들은 보통 불륜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동적이지는 않았지만, 후대의 기준으로는 '남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반 모리스는 이들을 얼굴에 흰 가루를 묻힌 술꾼이자 향기나는 바람둥이들, 폭력을 혐오하고 그들이 경멸하는 무례한 지방의 무사들에게 거친 것을 맡긴 시인으로 묘사한다.13
1186년부터 1600년까지 중세 시대의 문학에는 사랑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3~14세기의 주요 장르는 당대의 전쟁 이야기였고,14 무사는 새로운 남성적 이상이자 영웅이 되었다.
신사와 절의 후원에서 14세기 군사 아시카가 막부의 후원으로 발전한 노극에서 여성은 계속 고통을 겪었다.15 많은 노 연극에서 떠돌이 승려가 지상에 돌아와 옛 비극적인 사랑을 재현하는 여성 귀신을 만나게 된다.16 그녀는 '자신 때문에 남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이것이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거나 세속적이고 낭만적인 애착을 버리지 못해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환생하는 것을 거부당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이 설정은 부처님 자신이 환상의 여인 마야의 유혹에 저항하는 모습을 변형한 것처럼 보인다. 즉, 떠돌이 스님은 여성 유령의 매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집착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 귀신은 애착이 있기 때문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그 인간적인 매력은 많은 노극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이유 중 하나이다.
17세기에 이하라 사이카쿠는 <남색대감(男色大鑑)>에서 무사들의 동성애를,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과 다른 작품에서 상인 계급의 이성애에 대해 썼다. 사이카쿠의 동시대 작가인 치카마츠 몬자에몬은 게이샤와 어떤 점원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두 사람이 동반 자살하는 내용의 인형극 희곡을 썼는데, 이 작품은 나중에 가부키에 채택됐다. 사이카쿠의 냉소적인 태도와 치카마츠의 파토스는 경솔한 성관계는 허용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은 사회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던 당시 유교적 도덕관을 드러낸다.
당시 지배 무사들은 신분에 따라 행동이 규제되고 적절한 역할극은 복종으로 구성된 엄격한 계급 시스템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17 치카마쓰 연극에서 게이샤와 사랑에 빠진 청년은 상인으로서 의무를 저버리거나 부모나 주인에게 불복종했다. 지배 계급은 무사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신분 간 결혼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만, 무사 자신이었던 치카마츠는 낭만적 사랑이 필연적으로 남자의 사회적 역할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그의 연극에서 사랑과 사회로부터의 자유는 모두 가능하지만 죽음을 대가로 치러야만 가능하다. 진정한 연인은 파멸하기 때문에 사회 질서가 긍정된다. 관객은 대리 쾌락을 얻고 그러한 행위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받는다.18
그러나 치카마츠의 연인들은 비록 잠깐이지만 사회를 초월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미지마에서의 동반 자살(心中天網島)>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자 주인공 코하루가 연인 지헤이의 죽음의 결심을 의심하자 그는 가족적, 사회적 유대를 상징하는 머리의 상투를 자른다.19 안심한 그녀는 기녀 머리의 활을 자른다. 머리를 늘어뜨린 채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은 사회적 신분을 벗어던지고 아담과 이브처럼 순수한 남자와 순수한 여자가 되었다.20
연인이 죽기 전에 떠나는 여행, 즉 미치유키에서도 초월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노에서 미치유키는 순례승이 저승의 유령이 나타나기 전에 떠나는 여행을 의미한다.21 가부키에서 미치유키는 단순히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치카마츠 연인들의 초월적인 성격은 아미타불의 정토에서 같은 연꽃 위에서 함께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세속화가 이전의 종교적인 중세 시대에 비해 지배적인 시대적 특징이기 때문에 치카마츠 자신이 이를 믿었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22 그러나 그가 이러한 시적 암시를 사용한 것은 연인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서양의 순수한 연인 이야기는 낙원에 있는 아담과 이브의 순수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인 것 같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신화에는 타락이 없다. 치카마츠는 다른 방향에서 미묘한 순결에 대한 보편적인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서양의 10대 연인과 달리 치카마츠의 연인은 순수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코하루는 불결한 매춘부이고 지헤이는 평범한 점원입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된 후에 순수해진다. 치카마츠의 '동반 자살'(心中) 연극의 주제는 순수한 연인 대 불순한 세상이 된다. 치카마츠뿐만 아니라 이전 시대에도 이러한 자살은 있었지만, 이를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은 작가는 아마도 그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상인을 위해 희곡을 쓰는 사무라이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위치, 즉 자신의 모호한 지위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카마츠의 '동반 자살' 희곡에서 상당한 사회적 항의를 보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사토 타다오는 일반적으로 치카마츠의 연인들은 비극적 상황으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는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라고 지적한다.23 영화 <치카마츠 이야기>(近松物語, 1954)에서 미조구치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 요다 요시타카의 도움을 받아 연인, 특히 여주인공을 자살을 거부하고 웃는 얼굴로 간통죄 처형장으로 가는 강한 인물로 바꿨다. 하지만 초월주의는 잠재되어 있더라도 반항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미조구치는 치카마츠의 원작에 암시된 반항을 명시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동반 자살은 일본 최고의 러브 스토리가 되었으며, 치카마츠의 희곡을 현대 영화화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두 연인은 모두 곤경에 처해 고통을 겪었지만 여주인공은 사랑 때문에 자살했다는 점에서 선조들보다 더 고귀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노의 여자 귀신들이 전생의 사랑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저승에서 고통을 겪은 것과 달리, 치카마츠의 여주인공은 현생에서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자살로 연인과 함께 연꽃에 다시 태어나든 아니든 고통을 끝냈다.
여주인공의 연인은 보통 약하고 어리석고 무모하지만 잘생긴 남자였다. 가부키에서 그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강한 무사를 연기하는 주연인 다테야쿠(立て役) 다음으로 두 번째 지위가 주어지는 배우인 니마이메(二枚目)가 연기했다. 이 이분법적인 남자 주인공의 모습에서 바람둥이로서 폭력을 혐오하는 궁정 귀족과 로맨스를 경멸하는 무사 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자의 두 번째 지위는 그가 역사적으로 후자에 의해 전복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부키에서 평화로운 연인은 상인 계급의 하층에 위치함으로써 더욱 약화되었다. 모든 것의 덧없음에 괴로워했던 겐지 왕자와는 달리 자금 부족은 종종 그의 비극을 촉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토 다다오에 따르면 가부키 니마이메는 종종 다테야쿠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으며,24 그의 호소는 아마도 시대를 지배했던 유교적 정조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 같다.
최초의 ‘현대적’ 일본 러브 스토리는 서양의 로맨스 사상에 영향을 받은 소설가들이 세기 전환기에 썼던 작품이다. 이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1890년경에 시작된 새로운 극장인 신파 연극으로 각색되어 1900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1910년대 초 최초의 영화 러브 스토리는 신파 연극을 영화화한 것에 불과했다.25 이 현대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대개 최신 서양 패션을 입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비극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가부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생인 주인공들은 봉건 시대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나약했다. 그들은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여주인공과 함께 자살할 만큼의 배짱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계층화된 사회의 봉건 상인들과는 달리 근대화된 일본에서는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가장 유명한 신파극인 '부계도(婦系図)'의 주인공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게이샤를 사랑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게이샤 스승은 언니처럼 두 사람의 감정을 감지하고 함께 살도록 주선한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자 후원자는 그녀의 낮은 지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그 여자와 헤어지라고 명령한다. 주인공은 충실하게 따르고 여주인공은 고통을 겪다가 결국 충실하게 죽는다.
신파 연극의 원작 소설에서 작가 이즈미 교카는 부모나 상급자가 주선한 결혼이라는 일본 전통 관습에서 자유 연애를 부정하는 것을 공격했다.26 그러나 신파 각색가들은 관객과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부모/상급자/하급자 관계를 최우선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서구적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로맨스는 부모나 선생님과 같은 가상의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되었다. 맛은 볼 수 있었지만 슬프게 끝나야 했다. 청년은 순종하고 수동적으로 사랑을 놓아주어야 한다. 위의 상황을 일본인들은 기리(義理)와 닌조(人情), 즉 의무와 인정의 갈등이라고 부른다. 청년은 소녀를 사랑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그것이 더 중요하다. 서양인에게는 매우 냉정해 보이지만, 청년이 자신에게 자상한 아버지 같은 스승도 사랑한다는 사실이 일본 관객에게는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늙은 선생님은 고집은 세지만 제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악당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극적인 측면에서 그는 비극을 촉발하는 방해꾼이자 오래된 가치를 긍정하는 제3자입니다.
이즈미 교카의 소설을 각색한 또 다른 인기 신파 작품인 <타키노 시라이토>에서는 현대 사회가 연인의 비극을 촉발한다. 타키노 시라이토는 대학생 연인을 유혹하는 여성 연예인의 예명이다. 그 후 그녀는 그의 누나처럼 행동하며 그의 대학 교육에 필요한 돈을 보내기 위해 희생을 한다. 불행히도 그녀는 나중에 돈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재판에서 판사는 그녀의 애인이다. 그는 그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후회 끝에 자살한다.
주인공의 수동성은 미조구치의 1933년 영화 버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 장면에서 그는 다리 위에서 졸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그의 앞에 위엄 있게 나타난다. 여기서 겐지 이야기에서 꿈의 다리는 다리 위에서 로맨스를 꿈꾸는 수동적인 남성이 된다. 많은 신파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학생이라는 주인공의 신분은 중국 명나라 이야기에서 젊은 학생들이 과거 공부를 위해 수도에 와서 타키노 시라이토 같은 여성 연예인들과 연애를 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1868~1912년) 대학생들은 서양 문물과 과학 지식을 습득한 후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 미래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학생 주인공은 현대적 의미를 더 많이 지니고 있다. 사토 다다오는 그들이 신분이 상승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족과 자매 같은 연인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27 <타키노 시라이토>에서 엿볼 수 있는 근대화의 비극적인 이면은 여주인공의 고통을 고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성이 성공을 위해 여성을 버리는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며 1958년 영국 영화 <꼭대기 방>(Room at the Top)의 사회적 항의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타키노 시라이토>는 이러한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희생은 근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부계도>에서 주인공은 고통받는 여주인공이 죽은 후에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키노 시라이토>에서 그는 자살했다. 이러한 비난에는 사회적 항의가 내포되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행동은 여주인공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톨스토이적 회한은 이미 일본 문화에 들어와 있었고, <부활>을 원작으로 한 <카투샤>는 신파의 레퍼토리로 1914년에 이미 일본 영화로 제작되었다.28 이러한 개인적 회한은 약하고 수동적인 남성의 고통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영화 제작자들은 가부키와 신파의 비극 전통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고 사랑 이야기에 할리우드 같은 해피엔딩과 음악을 추가해 비극의 전통을 깨뜨리려 애썼다. 1930년대에는 "멜로드라마"라는 새로운 영화 장르가 등장했는데, 당시 일본인들에게 멜로드라마는 말 그대로 "멜로디"와 "드라마"를 합친 말처럼 보였다. 이전에는 여주인공이 슬픈 포즈를 취하는 동안 사운드 트랙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무성 "발라드 영화"(코우타 에이가-小唄映画)가 대부분이었다.29 일부 신파 영화에도 멜로디가 몇 곡 있었다.30 이 새로운 장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멜로드라마를 다루었지만 타이틀 곡 외에 더 많은 노래를 포함하고 더 복잡한 줄거리를 가졌으며 결국 올 사운드 영화가 되었다. 가장 좋은 예는 1938년 흥행 기록을 경신한 노무라 히로마사의 <애염의 계수나무(愛染かつら-아이젠 카츠라)>이다.31
여주인공은 간호사로 일하며, 당시에는 존경받는 소녀들에게 적합한 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현대적 직업이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결혼을 주선할 수 밖에 없는 보호소 소녀나 열등한 지위에 있던 게이샤 등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의사이자 병원 주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지위보다 높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피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병 때문에 제때 기차역에서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녀는 과부이다.) 그 후 두 사람은 운명의 장난과 오해로 떨어져 지내다가 그녀가 인기 가수로 데뷔하면서 타이틀 곡을 부를 때 웅장한 피날레에서 재결합한다.
혼자 있을 때 사운드 트랙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카메라를 향해 슬픈 포즈를 취하고, 주인공과 함께 있을 때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는 등 <애염의 계수나무>의 여주인공은 발라드 영화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은 타키노 시라이토만큼 고상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목적이 없었고 결국에는 행복과 마찬가지로 우연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나약함과 수동성은 그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파 영웅이라면 하지 않았을 부모를 반대하고 가부키와 같은 동반 자살이 아닌 도피를 제안함으로써 전통을 깨뜨렸다.
이 주인공의 초기 강인함은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본토를 향해 진격하는 일본군처럼 니마이메도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적절한 원인은 그와 그의 사랑 사이의 장벽, 즉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과거만큼 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근대 군국주의는 가난한 농장 소년이 갑자기 황제의 군인이자 잠재적 전쟁 영웅이 되었다는 점에서 평등주의적 측면이 있었다. 군대 내에서는 잔인한 서열이 존재했지만, 1938년 입대 신청서와 호적에 귀족과 평민 등 사회적 신분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폐지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사회 전반은 좀 더 민주화되었다.32 따라서 <애염의 계수나무>의 주인공이 신분이 낮은 여성과 도피를 결심했을 때 그의 행동은 시대 흐름에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부모가 반대했기에 주인공은 그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고, 그런 반항이 처벌받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타협으로 행복하게 끝난다. 두 사람은 이전에 서로의 사랑을 맹세했던 애염의 계수나무 앞에 서 있다. 그녀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그는 이미 부모님이 자신을 인정해 주셨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계수나무라는 전통적인 모티브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전형적인 미국식 해피엔딩이다.
<애염의 계수나무>와 다른 러브 멜로를 제작했던 쇼치쿠 스튜디오의 대표였던 기도 시로는 당시 국민들이 전시의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전한 오락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33 따라서 <애염의 계수나무>는 할리우드 뮤지컬의 분위기로 완성된 순수한 도피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랑 이야기는 여주인공 대신 다른 여성, 즉 남자를 잃은 여성이 계속 고통을 겪는다는 조건으로만 해피엔딩이 허용되었다. <애염의 계수나무>의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동안, 그의 절친한 친구의 다소 공격적인 여동생이 그를 위해 연극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누나는 그를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벌과 사귀는 것을 돕기로 동의했다. 그녀는 훌륭한 동지로서 '성공'한 후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떠났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 있었다. 여주인공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으니 누군가는 그 전통을 이어가야 했다. 또한 공격적인 여성은 남자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수동적인 행동이 더욱 정당화된다.
자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물러서는 것은 오늘날에도 일본 러브 스토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싸우는 드라마도 일본에는 존재하지만, 양보하는 것이 더 고귀한 것으로 여겨진다. 좋은 예로 <난류>(暖流, 1939)가 있다. 부유한 집안의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는 이유는 옛 고등학교 동창도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시 만나 함께 바닷가를 걷다가 얼굴에 물을 튀기며 눈물을 감춘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친구의 불행에 근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귀한 고통을 겪었다. 그녀의 친구는 신분이 훨씬 낮았고, 요시무라 코자부로 감독은 부자를 위해 가난한 사람이 희생하는 낡은 패턴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매우 현대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자기 희생이 점점 더 많이 요구되었다. 1939년 <난류> 이후 일본 국민은 국가를 위해 낭만적인 사랑은 물론 다른 사적인 욕망도 사심 없이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러브 멜로 드라마는 점차 제작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미 점령군은 여성 해방을 소재로 한 로맨틱 영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34 그 결과, <안조가의 무도회>(安城家の舞踏会, 1947)에서는 쇠락해가는 상류층 가정의 하녀가 잘 나가는 아들을 쫓고, 그의 누이는 전 운전기사를 쫓는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두 여자 모두 남자를 얻는다. 요시무라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귀족 딸이 하이힐과 진주 목걸이를 모래사장에 남겨둔 채 남자를 쫓아 해변으로 뛰어가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따뜻한 흐름에 대한 비난을 뒤집었다. 신분적 배려보다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민주적 옹호는 여주인공을 고통에서 해방시켰지만 수동적인 남성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50년 타니구치 센키치 감독의 반전 영화 <새벽의 탈주>(暁の脱走)에서 여주인공은 중일 전쟁 중 고비 사막을 가로질러 일본군 남자친구를 쫓아간다. 타니구치와 요시무라 모두 1931년 일본에서 처음 개봉한 이후 인기를 끌었던 요제프 폰 스턴버그의 <모로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35 게리 쿠퍼를 따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마를린 디트리히의 모습은 일본 점령군도 배제하지 못했던 수동적인 남성의 순수한 소원 성취를 그린 것이었다. 점령 후 일본 감독들은 종종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1953년, <너의 이름은>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이 나약한 수동적 남성과 다시 만나 <애염의 계수나무>를 리메이크한 듯한 러브 멜로드라마로 새로운 흥행 기록36을 세웠다. 이번에도 젊은 연인들은 운명의 굴레와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여주인공의 남편 등 방해하는 제3자에 의해 헤어지게 되고, 여주인공을 위해 한 발 물러선 여자에 의해 해피엔딩이 만들어진다. 멜로디도 많지만(총 8곡), 일본에서는 고급 음악으로 간주되는 오르간 음악이 많이 등장해 악보에 흠집이 난다. <너의 이름은>의 엄격한 시어머니는 전쟁 전 전임자를 걱정하는 병든 아이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어느 주인공이 더 고통받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두 영화에는 시각적인 차이가 있다. 전후 영화에서는 고통받는 전쟁 전 여주인공의 바스트 샷이 종종 얼굴 전체 클로즈업으로 대체된다. <너의 이름은>의 여주인공은 종종 후드나 머리를 가리는 목도리를 두른 채 등장합니다. 감독은 중세 이탈리아 그림에서 후광이나 두건을 쓴 성녀처럼 보이게 하여 마돈나 효과(일본에서는 여주인공에게 '마돈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오르간 음악도 기독교적 고난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는 전후 서양의 기법과 내용에 대한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연인이 공습 중에 처음 만났다는 구실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전의 일본 러브 스토리에서 소년은 소녀를 완전히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다. <애염의 계수나무>에서 그들은 같은 장소에서 일했는데, 이는 게이샤 집과 같은 오래된 만남의 장소에 비해 현대적인 발전으로 간주되었다. <너의 이름은>의 연인이 공습 후 다리 위에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도 오래된 다리 모티브에 현대적인 파장을 더한다.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회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두 사람이 만나 사회적, 가족적 관계를 뒤로한 채 반대편 해안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죽기로 결심한 후에야 순수해진 치카마츠의 연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순수했던 아담과 이브처럼 초월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과 <애염의 계수나무>가 다른 전작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여주인공이 실제로 주인공의 상황 변화를 기대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종종 슬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무언의 호소를 하는 장면이 찍혔다. <애염의 계수나무>의 여주인공은 주인공이 자신들을 갈라놓는 신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상대역은 전후 민주화된 일본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 때문에 그렇게 체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남성은 그 원형에 충실하게 다른 남자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거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이혼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고 말하며 그녀의 호소를 외면하고 무시했다.
여주인공의 태도 변화는 주인공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쟁 전 전임자처럼 둘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돕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해피엔딩은 <애염의 계수나무>에서처럼 우연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적절하게도 이 장면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며 두 사람의 최고의 러브 신이다.
여주인공은 치명적인 병에서 막 회복되었고, 남자 주인공은 병상 너머에 서 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이 그녀에게 준 모든 고통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자비로운 미소를 짓는다. 눈물로 가득 찬 그의 눈에는 마침내 그녀와 하나가 된 기쁨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의 의지 부족, 누락의 죄, 영적 무력함을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기쁨이 넘친다. 그리고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여성이 나약하고 수동적인 남성을 용서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의 고통이 끝난다.
1954년 <너의 이름은> 3부 이후 일본 영화에서 러브 멜로 드라마의 인기는 점차 감소했다. 50년대 후반 이시하라 유지로와 같은 젊고 활동적인 스타가 등장한 것이 쇠퇴의 원인 중 하나였다. 이들은 수동적인 남성을 현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대체했는데, 이는 결국 60년대 영화의 주요 관객이 된 젊은 남성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37 60년대 중반 이시하라 유지로의 액션 영화에 로맨스가 추가되면서 약 5년 동안 그는 싸움과 사랑 장면에 똑같이 능숙한 할리우드 스타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시하라가 TV 프로듀서가 된 후 다카쿠라 켄의 순결한 무사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幸福の黄色いハンカチ, 1977) 같은 영화에서 부부간의 행복을 맛보기 전까지 그러한 로맨스는 일본 영화를 떠났다.
영화에서 러브 멜로 드라마가 쇠퇴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장르가 처음부터 주요 지지층이었던 주부들이 주 시청자인 TV로 옮겨갔기 때문이다.38 그러나 장르를 옮긴 결과, 드라마는 복잡한 줄거리와 전국 각지의 로케이션, 주제곡이 하나밖에 없는 할리우드 뮤지컬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국내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그 결과, 고통 받는 여성과 나약하고 수동적인 남성은 현재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너의 이름은>에서 가졌던 미묘한 특성은 사라졌다.
이러한 미묘한 감성에 여전히 관심이 있는 일본 시청자들은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할리우드 러브 스토리에서 그 감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항상 인기가 있었지만, 특히 1954년 <로마의 휴일>이 큰 히트를 친 이후로 더욱 그렇다.39 많은 일본인은 자신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미국인에게는 약간의 고통만 감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론
톨스토이와 할리우드 영화 등 서양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가부키 '동반 자살' 연극의 '고통받는 여성과 나약한 수동적 남성'의 원형은 대부분 가부키의 형태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유교적 우선순위가 약화되면서 남성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고통과 수동성은 순종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뒷받침했지만, 그 원형은 일부 선전부에 의해 사회적으로 조작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반드시 복종적인 것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에 호소했고, 연극적 카타르시스의 형태로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심리적 해방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초월적 측면을 다루기 전에 여기서 살펴볼 사회심리학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일본에서 고통은 현상 유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주입된 가치인 인내의 미덕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참고 견뎌냈다. 기독교 전통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지상의 고통에 대한 하늘의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충분히 고통 받고 기다리면, 즉 인내하면 이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고통은 동정심에 호소할 뿐만 아니라 죄책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의 여주인공이 완벽한 예이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수동적으로 고통을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잘못한 남편과 자신에게 제대로 해주지 않은 애인에게 죄책감을 유도했고, 결국 이혼과 원하는 남자를 얻었다. 나약한 수동적 남성은 오로치의 허무주의적 영웅의 경우처럼 동정심을 호소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여주인공의 행동은 조지 드 보스(George A. De Vos)의 결론처럼 '조용한 고통'으로 자녀에게 죄책감을 유발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일본 어머니의 행동을 모델로 삼았다.40 이러한 심리는 1950년대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어머니 영화'(母もの)에서 영화적으로 표현되었다.41
이안 부루마는 "어떤 의미에서 일본의 러브 스토리는 모두 하하 모노의 변형"이라고 말했다.42 그의 관찰은 타당하지만, 두 장르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1950년대 영화에서 어머니의 고통은 가난에 기반을 두었고, 어머니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배은망덕한 자식들을 조롱하며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했음을 상기시켰다.43 이러한 평범한 계략과 달리 새하얀 병실에서의 러브 멜로 주인공의 고통은 짝사랑에 기반을 둔 미묘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장르 모두 일본인의 삶의 현실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어머니이자 연인이자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여성은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참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연인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해 상황을 개선하고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도덕적 마조히즘은 서양에도 존재하지만, 남성에게도 기대할 정도로 수동성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에서는 그렇게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다. 고통과 수동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기다림을 요구하는 인내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수동성은 순종을 의미하지만 개인적 보상도 있다. 기다림과 순종을 통해 청년은 보통 상사로부터 승진하고, 결국 꿈에 그리던 여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적합한 배우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만큼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자신의 배우자를 찾는 '현대적' 생각이 자리 잡은 현대 일본에서는 남성의 수동적인 행동이 지속되는 것을 사회적 강화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뿌리 깊은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에즈라 보겔은 일본 어머니가 자녀의 욕구에 반응하고 자녀가 스스로 인지하기 전에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44 결과적으로 일본인은 유치한 떼를 쓴 후 인내심을 배우고 나중에 어머니 대신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림으로써 성숙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기준에 따르면 이러한 양육 방식은 환경이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든 쉽게 만족할 수 있는, 명확한 욕구 없이 약한 자아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욕망과 환경 사이의 갈등이 완화되어 서양보다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었다.
일본의 어머니들은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착한 소년, 소녀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본에서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욕구나 필요가 충족되었다고 느끼는 자아로 이어진다. 이 성격 유형은 변화할 수 없는 사회 환경과 그에 적응해야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자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교적 또는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명확하게 생각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환경이 자주 바뀌는 경우가 많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무욕'으로 구성된다. 욕망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집착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불교적 성격 유형에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인처럼 욕망이 강하지는 않다. 일본인은 어떤 욕망이 충족되기를 기다리지만 그 욕망이 무엇인지 완전히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응력은 소극성과 공존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의 좋은 예가 바로 <난류>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그가 부자 소녀를 정말 사랑한다고 믿게 되지만,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철학적으로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 후 그녀가 여자 친구에게 청혼을 제안했을 때 그는 헌신적이지 않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그를 찾아와 결혼은 이미 예정된 결론이라며 결혼을 결심한다. 일본인에게는 실용적으로 보이고 서양인에게는 현명하게 사랑하지만 너무 잘하지는 못하는 경박해 보이는 남자이다. 하지만 애초에 둘 중 하나에 대한 그의 욕망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상황에 적응함으로써 그는 적어도 어느 정도 욕망을 충족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수동성은 종종 고통과 결합하지만, 적응력과 결합하면 연인의 자살을 다룬 치카마c,의 연극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강한 욕망에서 오는 고통을 실제로 예방할 수 있다.
<난류>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일본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이고 존경할 만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수동성이 고통과 연결되면 성적 마조히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비정상적이거나 일탈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과 같은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조히즘은 일본 문학과 소프트 코어 포르노 영화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문학의 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백일몽>은 1964년 다케치 테츠지 감독에 의해 선정적이지만 흥미로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소년은 여자 친구와 함께 치과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소년은 치과 의사가 소녀를 유혹하는 공상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중년 남자가 소녀를 결박하고 포승줄과 전기 충격으로 고문하는 동안 그가 현대 아파트 창문 밖에 서서 무력하게 지켜보는 장면이다. 점차 그녀는 그것을 즐기기 시작하고 심지어 오르가즘을 경험한다. 백일몽이 끝나기 전에 청년은 소녀를 죽이지만 사디스트는 그를 교묘하게 피해간다.
<난류>와 일반적으로 러브 멜로 드라마 장르에는 <백일몽>의 새디스트에 해당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계획적인 유혹을 하거나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 여성과의 결혼을 냉정하게 계산한다. 약하고 수동적인 남성과 비교하면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활동적이다. 그는 또한 연인을 괴롭히거나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부자에 천박한 인물 또는 멍청한 인물로서 가부키의 선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부키나 연애 멜로 드라마의 '활동적인 남성'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얻거나 그녀를 만족시킨 적이 없다. 따라서 <백일몽>에서 수동적 남성에 대한 사디스트의 승리는 비록 방식과 전형적 구성은 비슷하지만 반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비난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존경할 만한 영화에서는 수동적인 행동이 종종 보상을 받는 반면, 포르노에서는 마조히즘적 쾌락의 원천인 처벌을 받는다.
마조히스트와 사디스트는 하나의 인물로 결합될 수 있으며, 일본 소프트 코어 포르노 영화의 일반적인 라벨인 전형적인 "핑크" 영화(1971년부터 닛카츠가 올 컬러 "로망" 포르노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기 전까지는)인 <태아가 밀렵될 때>(胎児が密猟する時, 1966)가 좋은 예시이다. 하지만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이 영화를 매력적인 영상으로 재탄생시켰다. 중년의 백화점 매니저가 젊고 예쁜 여직원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약을 먹인 후 고문한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른 모든 여성들처럼 자신을 괴롭힌다고 상상한다. 한 꿈에서는 진공 상태의 방에서 알몸으로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엄마를 부르며 울고 어린 소녀가 자장가로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는 자신을 괴롭히고자 하는 의식적인 욕망이 없는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성 콤플렉스를 가진 수동적인 남성으로 묶여 있다.
이안 부루마는 이 영화의 "자궁으로의 회귀" 메시지(제목은 "태아가 밀렵을 당할 때"로 번역됨)43에 주목하며 "여성의 성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트라우마"를 나타낸다고 결론지었다."46 반면 사토 타다오는 이 영화를 동화에 비유했는데,47 이는 와카마츠가 자신의 비뚤어진 방식으로 어린 시절 순수함의 세계를 되찾으려는 것임을 암시한다.
순수함의 상실은 일상 세계를 초월한 진정한 연인의 이야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종교적 모티브이다. 유교적 억압을 배경으로 불교적 해탈의 분위기 속에서 이 모티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본 영화는 버그만의 <산딸기>와 유사한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걸작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野菊の如き君なりき, 1955년)이다.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노인이 나룻배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뱃사공에게 6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마을에 왔다고 말한다. 화면 밖 독백에서 그는 죽기 전에 남은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뿐이라서 돌아왔다고 관객에게 말한다. 모든 것이 변한 마을 아이들은 귀신이 들린다는 생각에 그의 옛 농가에서 놀며 스릴을 느끼지만, 그는 다시 독백을 통해 죽은 첫사랑, 유일한 사랑은 결코 그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독은 타원형의 흰색 액자에 담아 오래된 사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가장 가까운 어린 시절 친구이자 첫사랑은 그의 집에 하녀로 온 어린 소녀였다. 그들은 종종 들판에서 야생화와 식용 식물과 허브를 따고 서로의 곁에서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남매처럼 친밀하지만 결국 그들의 친밀함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하녀와 소년의 시누이는 미망인이 된 어머니에게 더 이상 자녀가 아니며 신분과 나이 차이로 인해 부적합한 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열일곱 살이고 그는 열다섯 살이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동의하고 먼저 소녀를 임시로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소년을 고등학교로 보냈다.
키노시타 감독은 이전에 <여자의 정원>(女の園, 1954)에서 젊은 연인을 갈라놓는 냉정한 성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구시대적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우뚝 솟은 봉건성 기슭의 점 같은 인물로 그들을 촬영하여 이를 시각화했다. 그러나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에서는 거의 모든 어른들이 동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며(나이든 하녀는 결국 회개한다), 마을의 관습이 그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 예외는 시누이인데, 시누이의 유일한 동기는 자신의 남편과는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정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소년이 학교에 가는 날 아침, 소녀와 나이든 하녀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소년을 배웅한다. 종이 우산을 든 여자가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소년의 배를 바라보는 하이 앵글의 롱테이크 장면이 있다. 그는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없는 동안 그녀는 결혼을 하고 출산 중 사망할 것이다. 플래시백이 끝난다. 노인은 마른 강바닥 위 긴 나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키노시타 감독은 청춘의 강과 노인의 꿈의 다리를 병치함으로써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영원한 청춘과 노년의 이미지를 환기시켰다. 중년은 생략되었다. 노인은 변하지 않았다. 서양인에게는 립 반 윙클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순결한 전사의 원형인 모모 타로와 함께 일본 민속 영웅 중 가장 인기 있는 우라시마 타로의 모습에 더 가깝다. 바다거북이 우라시마 타로를 용왕의 수중 왕국으로 데려가 바다의 처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돌아온 그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마자 노인이 되었다.48 그는 중년도 건너뛰고 첫사랑과 노년만 경험했다. 게다가 그는 운명의 호의와 불호의 수혜자에 불과했기에,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여성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나약한 수동적 남성의 동화적 원형이다.
영화는 거대한 나무 아래 잎은 무성하지만 금단의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난쟁이처럼 보이는 노인의 묘지에서 끝이 난다. 그는 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 그녀를 들국화에 비유한 시의 제목이 화면에 나타난다. 이 시는 삶의 소멸을 애도하는 고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단가 형식으로 쓰여졌다.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양의 향수를 담은 영화와는 다르다. 죽음은 어린 소녀의 변화를 막았고,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를 순수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보편적인 비극적 젊은 연인 모티브의 일본 버전이다. 만약 그녀가 죽지 않고 결혼을 허락했다면 두 사람은 그저 평범한 중년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 마을의 관습과 시누이의 질투는 구실에 불과했다. 이 일본 연인은 아르네 매트슨의 1951년작 <여름의 고뇌>(Hon Dansade en som-marj)에 등장하는 스웨덴 연인을 닮았는데, 소녀도 죽었지만 일본인은 반짝이는 강에서 누드 러브신을 위해 칙칙한 시골 옷을 벗는 것은 물론 키스나 포옹을 하지 않는다.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는 랜달 클라이저의 1980년작 <블루 라군>과도 닮았는데, 아담과 이브를 닮은 연인이 독이 든 과일을 먹으며 순수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문명에 의해 '구조'될 때까지 잠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본 영화는 불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타락이나 순수의 위대한 상실은 없다. 다만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노인의 말처럼 "당신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기억의 불변성으로 인해 가슴 아픈 상실이 계속되고 있다.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의 지배적인 어조는 유교적 가족 및 사회적 관계는 젊은 노인의 사랑의 불변성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존재의 환상적 성격이었다. 이러한 불교적 형태의 초월주의는 유교적 규범과 긴장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보편적 주제의 진정한 일본적 표현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불교적 정서가 쇠퇴하고 유교적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일본의 러브 스토리는 점점 더 서양의 그것과 닮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애염의 계수나무>와 <너의 이름은>은 유교적 억압이 형성 과정에 많이 반영되었지만, 불교적 특성은 수동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단계에 해당한다. 게다가 수동적인 남성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들국화와 같은 너였노라>는 마지막 진정한 일본식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